사회복지현장가라면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한 번 해보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자기 자신만의 답도 찾았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상황 설정)

A라는 조직이 ‘00페스티벌’이라는 기획사업 – 전년도까지는 사업계획에 없던 사업이었음 –을 추진하고자 한다. 그래서 본 기획사업 추진 직무를 배정받은 팀에서는 조직 내 타 팀장들과 함께 금번 00페스티벌 사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였다.

 

상기와 같은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는 회의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이 주로 공유 및 논의될까. 대부분이 아래와 같은 내용들 아닐까.

 

  • 00페스티벌 사업을 몇월에 실시할까.
  • 00페스티벌 사업은 일일 행사성 사업인가, 아니면 특정 사업수행기간이 필요한 사업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기념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연계협력업체 혹은 기관은 어떻게 되는가.
  • 00페스티벌 사업 예산은 어떻게 되는가.

 

물론 상기내용을 다루면서 목적 또는 목표 등을 다루기는 하겠지만, 크게 의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적과 목표 등에 대한 고민이 사업을 수행함에, 사업목표량을 달성함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 생각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해 논의되고, 추진되는 사업은 성공’할 수 있을.

 

여기서 성공은 사업목표량 달성 정도가 아니라 ‘A라는 조직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계몽에 크게 일조하였다, 지역사회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등과 같은 일정 성과를 담고 있는 결과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이와 더불어 매해 연속 시행되는 중장기사업으로 발전하거나, 타 시도 등으로 보급 및 확산 되어가는 모습 등과 같은 의미를 더해도 좋을 듯 싶다.

 

, 다시 한 번 더 질문한다. 상기와 같은 형태로 논의되고, 추진되는 00페스티벌 사업은 성공할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NO’라고 답변하고 싶다.

 

아래 표를 참고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1]은 '00페스티벌'이 '직무 담당자, 조직, 고객집단, 지역사회(사회문제)'에 둘러쌓여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사업은, 서비스는 그 직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현장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 사회문제 예방 및 해소 등을 위한 (전략적) 사업 혹은 서비스가 고객-지역사회-사회문제-조직(사회복지시설)’이라는 구조 하에서 최적화될 수 있도록 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그 직무 담당자의 주 역할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현장가는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종종 사회문제 - 직무 담당자 - 사업(혹은 서비스)’이라는 관점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 결과 사업(혹은 서비스) 설계로부터 실행 전반이 직무 담당자라는 개인 관점에서 이뤄지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고객을 위한다고, 지역복지를 위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 상황에서 추진된 사업에 대해 그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성공했다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쉽지 않다.

 

관점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

 

그렇기에 예를 들고 있는 00페스티벌 준비 회의는 [1]과 같은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회의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우선 포커스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질문유형들은 달라질 수 있다.)

 

  • 00페스티벌 사업은 어떤 사회문제를 예방 혹은 해소하기 위한 것인가.
  • 00페스티벌 사업은 그 사회문제 예방 혹은 해소 차원에서 적합한가.
  • 00페스티벌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고객, 지역사회, 사회복지시설 관점에서 어떤 장애요인이 있는가.
  • 00페스티벌 사업 관련 예상 장애요인별 대처방안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가.
  • 이와 같은 성격을 갖는 00페스티벌 사업은 우리 조직의 기능과 역할에 부합한가.

 

쉽지 않은 과정이다. 각 질문별로 답을 찾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이 사업에, 서비스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요, 그 결과 자기 자신만의 존재가치를 가지게되는 것(: 특화사업)이다. 달리 표현하면, 아래 [2]와 같이 변화의 존재가치를 갖게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상기 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나서, 그 다음으로 아래와 같은 서두에서 다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 00페스티벌 사업을 몇월에 실시할까.
  • 00페스티벌 사업은 일일 행사성 사업인가, 아니면 특정 사업수행기간이 필요한 사업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기념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 00페스티벌 사업 연계협력업체 혹은 기관은 어떻게 되는가.
  • 00페스티벌 사업 예산은 어떻게 되는가.

 

 

< 바람직한 양심으로 가는 길은 '개인적 자선, 개인적 관계, 사적 의무'를 통해야 한다.(러셀 커크) >

 

이 표현은 곧

 

'나'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관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관계'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의무와 권리'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결론적으로 '나'에 대한 자각이 바로 '(바람직한) 양심'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렇기에 '러셀 커크'는 아래와 같이 주장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지금까지의 내용을 재차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인권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와 가정, 사회, 국가 등과 같은 집단과의 관계에서

 

나는 인간이며

나는 000이며

나는 ~을 추구함을

 

존중 및 보호의 자각이며 실천(보장)이다.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 중에는 생존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이 포함된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정부가 세워지는 것은 이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미국 독립선언서 중)

 

이와 같이 인간은, 사회는 평화롭고 건강한 사회상태를 만들려면 사회제도를 위대한 도덕법칙에 부합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법칙이며, 물질과 운동의 법칙처럼 우리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법칙이다.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기계 제작자가 기계 제작과정에서 뭔가 물리적 법칙을 무시했으려니 추측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병폐와 정치적 불의를 발견할 경우, 사회조직 내에서 도덕법칙에 맞서고 인간의 자연권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평화롭고 건강한 사회상태 조성을 위한 사회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연권이 무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위정자들 및 국가권력자들의 인권에 대한 무지와 소홀함 또는 멸시(프랑스 인권선언문 중)'이다. , 공적 재난과 국가 차원의 부패의 유일한 원인은 인권을 보장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정부와 정부 관계자들의 인권에 대한 무지와 소홀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문제의 예방과 해결은 인권 존중, 인권 보호 그리고 인권 실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 본 내용은 '사회문제의 경제학(헨리 조지 지음 / 전강수 옮김)'을 바탕으로 재정리한 내용입니다.)

 

 

모든 사회문제에는 해결책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근본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정쩡한 대책이나 부차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 그치는 개량책은 항상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장기적으로는 아무소용이 없다.

 

(* 사회복지사들이 열심히 받는 교육 중 하나가 바로 기획교육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방안을 찾고자 하는 첫 출발지이다. 그렇기에 곰곰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회복지현장의 기획사업들은 현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 또는 예방능력이 어느 정도일까.)

 

 

 

그럼 사회문제의 근본적 발생원인은 무엇일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제 문제의 중심에는 '분배'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해결책은 간단할지 모르지만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고, 사회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야할 일은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방해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중략)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중략) 각 개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이 벌어들인 것을 전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문장이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매우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본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권리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으며, 후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부과하는 공정한 부담금 같은 것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다.(중략)

 

개인이 진정으로 관대해지려면 먼저 정의로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는 자비(또는 사랑) 이전에 먼저 정의에 기초해야만 한다.(중략)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사회제도는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한 작가가 모든 사람을 세 가지 범주, 즉 노동자, 거지, 도둑으로 구분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구분은 경제학적으로볼 때 옳다. 개인이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즉 노동, 타인의 증여, 절도밖에 없다.

 

노동자가 쥐꼬리만큼 부를 획득하는 이유는 분명히 거지와 도둑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생산하지 않은 부를 얻고 있다면, 그는 필시 그 부를 생산한 다른 사람들의 희생하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보자.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 정의에 부합하고 있을까. 정의에 매우 부합하다면 그 노동의 결과 즉 생산물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생산물은 공유와 공존의 가치를 진정으로 재생산하고 있을까.)

 

* 상기 글은 '사회문제의 경제학(헨리 조지 저 / 전강수 옮김)'에서 발췌, 부분 변경 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국민이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관심이 증폭되어지고 있는 사안을 두 가지 꼽으라면

 

첫째는 '피의자의 자수에 대한 경찰 거부'이고

둘째는 '탈북자 모자의 아사'일 것이다.

 

그런데 상기 2가지 사건 상호간에는 그 어떤 관련성도 공통성도 없는 것일까.

 

필자의 입장에서는 '관계의 문제요, 매뉴얼의 문제요,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적 접근 방식의 문제'라는 3가지 관련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첫번째 '관계의 문제'이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여 삶을 영위하는 방식은 '협력의 방식, 경쟁의 방식, 갈등의 방식'으로 나뉘어 진다. 그러면 상기 2가지 사건은 어떤 삶의 방식에 의해 발생한 문제일까. '갈등의 방식'에 의해 표출된 문제아닐까.

 

사회에 '갈등'이 만연해지면 인간 상호간에는 '불신'이 만연해지고 그 결과 '자신의 안위 또는 우리 가족의 안위'만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에서의 나의 행위는 소극적 책임을 다하는 범주에 안주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예를들면, 매뉴얼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매뉴얼에 기재된 절차와 횟수 등을 기계적으로 따라하기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나의 책임으로 인지하지 않게 된다. 이는 사회복지분야에서 '사업계획서'에 충실한 것이 사회복지에 충실한 것으로 오인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매뉴얼의 문제'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매뉴얼이 왜 존재하는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고객을, 시민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 매뉴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시민을, 국민을,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를 위함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을, 가치를, 존재 이유를 갖는 매뉴얼이 21세기 사회에서는, 사회복지현장 등에서는 '관계의 문제'와 결합되어 '나의 안위'를 제1순위의 가치로 떠받드는 형태로 변질되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기 2가지 사건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관계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매뉴얼대로 처리했음을 직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즉, 나는 직무 대비 매뉴얼대로 할 것은 했다. 그런데 지금 발생한 이 사건은 나의 직무 대비 매뉴얼 대비 내가 책임져야 할 범주를 넘어섰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장 형태에서는 본 사건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세번째는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제도의 접근 방식의 문제'이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인복지서비스'관점이라고 항상 주장하고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개념으로 논하면서 정작 그 예방 및 해소 방법으로는 대인 관점에서 즉, 개인책임주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상기에서 지적한 첫번째 문제인 '관계'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관계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사회문제에 다방면 영역으로 나뉘어져 접근하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전문가들이 서로 연계가 안 되는 것이다. 아니 연계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바보스러운, 뒷 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 직무 대비 권한을 넘어서 버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시혜적 관점, 개별적 복지관점, 의료적 재활모델 관점 등을 벗어던지고 사회적 모델 관점, 사회통합 및 참여 관점, 역량강화 및 자립 모델 관점으로 갈아입기는 하였지만... 옷을 바꿔입었다고 해서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성향까지 바뀐 것은 아니지 않겠나.

 

탈북자 모자 아사 사회문제를 들여다보자. 과연 사각지대였을까 아니다. 공적부조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고, 탈북자 관리시스템도 있었고, 수도 및 전기 관리 시스템이 있었고, 이밖에 사회복지 서비스 및 이웃과의 관계 등과 같은 공공 또는 민간 복지서비스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져 있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과연 '사각지대'일까. 사각지대가 아니라 '미필적 방임' 상태라고 봐야할 것 아닐까.

 

위험 시그널은 각 영역에서 그 정도는 다르지만 잡히는데... 그 위험 시그널의 결과는 인지하고 싶지 않았었던 것은 아닐까. 혹, 걱정은 되는데 걱정으로만 그쳐버린 것은 아닐까.

 

마무리해보자.

 

요즘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화두는 '커뮤니티 케어'이다.

 

필자 입장에서는 상기 3가지 관점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전시적 차원의 정책을, 행정을 추구한다면 '커뮤니티 케어'는 말 그대로 '시혜적 관점의 복지, 케어 국민과 비케어 국민을 양분하는 정책, 사회문제 예방 및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정체성이 없는 모방 정책, 복지국가 구현을 저해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예방 및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계'에 포커스를 맟춰서 대인 관점에서, 가정 관점에서, 지역사회 관점에서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관계 강화를 바탕으로 갈등과 불신이 해소되는,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적절히, 체계적으로, 발전적으로 연계와 협력이 살아 숨 쉬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 및 제도가 구현되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끝]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관계적 동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관계행위는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형태로 형성되고 있을까.

 

‘관계’란 흔히 말하는 ‘친구 관계’, ‘친척 관계’, ‘모자 관계’ 등과 같이 두 대상을 짝을 지어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개념이다.

 

이에 의하면, ‘관계’의 기준은 조상 및 가족(혈연), 교육(학연), 지역사회(지연), 사회적 활동(관심 및 참여) 그리고 사상 및 신념 등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사회적으로 어떤 형태의 관계적 차원을 형성, 유지 및 발전시켜나가고 있을까. 아마 아래 그림과 같은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1: 인간 관계망)


즉,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관계는 1차적으로 개인, 2차적으로 사회적 관계, 3차적으로 경제적 관계(예: 1차/2차/3차 산업구조), 4차적으로 행정적 관계(예: 행정부처 등) 그리고 5차적으로 정책/제도적 관계(사상/신념적 또는 정치적 관계)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간의 관계 차원은 1차적 단계인 개인을 정점으로 해서 1차적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자유’의 색채가 짙으며, 그 반대로 5차적 단계에 근접할수록 ‘평등’의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상기 그림에서 건강(보건의료), 치안(경찰 및 검찰), 교육, 정치 및 행정(의회, 행정부 및 지자체), 정보전달(우체국, SNS) 등과 같은 행정적 관계에 위치한 공공기관의 가치와 제 기능과 역할은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고, 반면에 경제적 관계 즉, 직업 활동, 기업 활동, 상업 행위 등과 같은 영리활동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지향하는 성향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안정적 자유를 도모하기 위해 관계를 추구하는 존재’인 우리 인간은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와의 관계와 다차원적 관계망 하에서 ‘나’에 대한 관계적 차원의 평등이 보장, 구현되지 않고서는 건강한 관계 유지가 힘들고, 궁극적으로 ‘나’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는 위험 정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지, 인간의 관계망 안에서 미시적 시야와 사고 그리고 현재의 개인적 욕구 충족 등으로 인해 그 사실을 망각하는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인간의 관계망 대비 2단계에서 5단계 사이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회문제 즉, 인간 개개인의 안정적 자유 향유의 침해 및 저해 등의 유무형 집합체인 것이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약자는 ‘자유 구현을 위한 평등한 인격체로서의 보장이라는 원칙과 기준 대비 인간 관계망 안에서 배체 및 소외된 시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회문제는 시대적으로 그 유형이, 영역이 그리고 행태가 동일 또는 유사할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사회발전이 곧 인간관계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관계는 우주와 같이 유한하면서도 무한하게 생성, 팽창하고 있는 다차원적 개념이요, 영역인 것이다.

 

그럼 사회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여 인식하고 해소 또는 예방해야 할까. 다양한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아래 표와 같이 인간의 관계망과 인간의 욕구를 대비시켜 살펴보는 방법을 그 예로 제시하고자 한다.

 

 

 

(표1: 사회문제 고찰표) 

 

이렇게 접근해보면, 인간 개인이 인간 관계망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로 또는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여지는 즉, 직면 또는 직면할 수 있는 사회문제는 25개 유형(5×5)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아래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 사회복지는 상기 그림1(인간관계망)에서 몇 단계에 위치해야 하는 개념일까.

  • 좀 더 나누어 살펴보면, 민간사회복지영역은 몇 단계에, 공공사회복지영역은 몇 단계에 위치해야 할까.

  • 이에 덧붙여 지금 현재의 민간사회복지서비스와 공공사회복지는 몇 단계에 위치하고 있을까.

  • 민간사회복지가 위치해야 할 단계와 현 단계 사이에 갭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을까.

  • 우리나라 사회보장 정책과 제도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어느 방향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 공공사회복지와 민간사회복지는 같은 방향으로 변화되어져 나아가고 있는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사회복지사인 나는 몇 단계에서 또는 어느 구간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인가. 그리고 어느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사고 과정을 통해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알아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복지는 인간의 관계망 대비 5단계인 정책과 제도 영역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5단계까지 포괄하고 있는 사상적 단계(6차적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는 개개인의 자유 향유에 해당하는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 향유가 하위 차원 즉, 1단계에서 4단계의 관계 단계에서 침해되지 않도록 또는 실효성 있게 향유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는 각 단계별 관계망에 위치한 지역자원의 제 기능과 역할이 바람직스럽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도모 및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유를 추구하되 평등을 항시 생각할 수 있도록 ‘등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문제에 직면한 고객이 인간 관계망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인지하고 예방 및 해소해나갈 수 있도록 1단계에서 5단계까지의 개인적 관계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고객과 민간사회복지 그리고 공공사회복지가 1단계에서 5단계까지 영역에서 ‘평등 구현’이라는 동일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제도 및 정책을 변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경제적 관계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그 변화 속에서 고객이 자기결정권이라는 자유 향유를 매개로 행복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도록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사회문제를 근시안적으로, 미시적으로 고찰하고 관련 해법을 강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의 신체 특정 부위만을 만지고 코끼리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리고자 했던 우화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끝]

재가복지 혹은 재가복지사업.


민간 사회복지현장에서는 빼고 싶어도 빼지 못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며, 각 민간사회복지시설 연 사업계획서에 이 영역의 사업은 필수로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하고 필수적인 재가복지사업에 대한 개념 정립과 심화는 사회복지사 및 사회복지시설 차원에서 과연 어느 정도 성취되고 있을까. 재가복지서비스를 받는 고객과 그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을까. 연 사업계획서에 기술돼 있는 재가복지사업계획이 해를 거듭해도 그 목표와 사업행태가 변화 없이 쳇바퀴 돌 듯이 똑같지 않을까.

 

재가(在家)는 집에 머물러 있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복지福祉는 행복한 삶,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역 환경이라는 의미가 있다. 정책적으로는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국민 전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 노력하는 정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럼 재가복지(在家福祉, domiciliary care)’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카두신(Alfred Kadushin)가족의 약화된 부분을 보완하는 보충적 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있고, 보건복지부 지침에서는 지역사회 내에서 일정한 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추고 필요한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 장애인, 아동들을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일상생활을 위한 서비스와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재가복지는 지금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큰 변화의 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 즉, 케어(care)를 요 하는 주민(노인, 장애인 등)이 살던 곳(자기 집, 그룹홈 등)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독립생활 지원이 통합적으로 확보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입원 등과 같은 복지병을 해소·예방함과 더불어 탈시설화, 사회복귀 등을 강조하는 커뮤니티케어처럼 재가복지 또한 시설복지와는 대칭되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 재가복지라는 개념에서 그 주 대상은 누구일까. () , 가정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주 대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가족복지(家族福祉 , family welfare)가족 전체를 사회복지의 대상으로 규정하여, 보다 통합적이고, 예방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기관 또는 민간기관이 수행하는 조직적인 복지 서비스 활동이다.  이 같은 개념의 가족복지는 사회복지의 대상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개인만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라는 점에서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이고, 또 보편적·개별적인 사후치료 중심이 아닌 사전예방적인 서비스 제공의 기능을 갖는 개념으로서, 재가복지(在家福祉)의 실시에 전제 조건이 된다.  


이에 가정복지와 재가복지는 상호가 선후 과정에서 구분되는 복지개념이기에 재가복지 주 대상을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재가복지는 주 대상이 생략된 용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가복지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먼저 재가복지의 체계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아래 그림과 같이 재가복지는 고객, 공급자(서비스 제공 기관), 상품(재가복지서비스=사업유형)로 구분된다. 고객은 시민, 가정(가족구성원 포함), 지역사회(지역자원 포함) 그리고 사회문제로, 사회문제는 문제(목적), 문제점(목표), 제약요인(방침)’으로, 서비스 제공 기관은 시설, 전문인력, 자본으로 나눠진다.



상기 표에서 재가복지의 고객이 시민, 가정, 지역사회(지역자원), 사회문제와 같이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재가복지가 표면적으로는 지역사회에서 가정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는 시민을 위해 존재하지만, 사회복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문제 해소 및 예방이라는 기능과 역할 또한 갖고 있고, 이와 더불어 거주시설에 기반한 복지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즉 지역사회의 안녕 도모를 토대로 그 지역사회 안에서 생을 영위하는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지역사회복지실천의 한 행태이기 때문이다.


일반집단 차원에서는 특정 지역사회에서 독립된 집()이라는 공간을 거점으로 동거인 또는 가족 등과 함께 독립된 삶을 영위함에 저해되는 사회문제에 노출된 또는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시민, 위험집단 차원의 지역사회에서 안정적 가정 영위를 저해하는 사회문제 및 가정문제 등에 노출된 시민, 표적집단 차원에서는 가정 안에서 삶의 질 향상을 추구를 저해하는 문제점과 제약요인에 노출된 시민이 바로 재가복지의 주 대상이 된다.


사회문제 차원에서는 재가복지라는 접근 방법을 통해 가정을 바탕으로 시민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문제점 그리고 제약요인에 대한 제 고찰을 통해 시민이 능동적으로 사회문제를 해소 및 예방해 나갈 수 있도록 도모함과 동시에 성공 모델을 지역사회에 제시 및 보급한다는 목적이 존재한다


또한 지역사회 관점에서는 특정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표적 또는 위험 집단의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동 지역사회에 확산될 수 있는 위험성 등을 해소 및 예방한다는 성과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가복지는 그 효율성과 효과성을 발전적으로 도모하는 차원에서 시민과 그 가정이 직면 또는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사회문제를 지역자원과의 연계하에 표적집단 -> 위험집단 -> 일반집단까지 확산 적용할 수 있는 형태의 중장기 전략적 기획 하에 점진적으로 추진하면서 해소 및 예방을 도모하는 지역사회복지실천이기에, 이 과정에서 서비스 제공 기관은 시설의 한계성 극복, 전문인력의 전문성 강화 그리고 자본의 안정화와 다양화 등을 지속적으로 도모할 책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재가복지와 관련해서 사회복지현장과 사회복지사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바로 '재가복지서비스'이다. 중장기 전략 기획 하에 연 단위별로 추진되는 재가복지서비스는 재가복지 목적과 목표에 바탕으로 둔 전술적으로 배치된 복지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성격을 갖는 재가복지서비스 유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유형은 정형화되어 있을까, 이와 같은 서비스 정형화는 재가복지 성격상 바람직한 것일까.  누군가는 자원봉사사업을, 누군가는 후원사업을, 누군가는 가옥구조개선사업을, 누군가는 사례관리사업을, 누군가는 지역자원 발굴 및 배치사업 등을 재가복지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복지학 사전에는  재가복지서비스는 시대적인 변천과 국민들의 사회복지 욕구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부양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며, 종래의 시설복지서비스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술되어져 있다. 이는 곧 재가복지서비스는 시대에 따라, 지역사회에 따라, 가정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시민별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본다. , 재가복지서비스는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다. , 사회문제 관점에서 문제점과 제약요인을 바탕으로 중단기 전략 목적과 목표 그리고 서비스 대상을 어떻게 연구·설정하였는지, 그 목표와 고객 대비 서비스를 어떤 방침 하에, 어떻게 전술적으로 배치하였고, 이와 같은 전략과 전술하에 어떻게 서비스 제공을 추진하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어느 정도 도출했는지 등을 모델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재가복지사업계획은 당해 연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문제의 성격과 정도 그리고 그 사회문제에 직면한 가정 형태와 그 가정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사회와 지역자원의 분포도 등에 따라 카멜레온과 같은 변화무쌍한 형태로 수립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이며, 이것이 바로 가장 최적화된 고객 맞춤형 재가복지사업계획인 것이다. 사과나무 농장에 가보면 많은 사과나무가 존재하나 그 사과나무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르고, 사과나무별로, 사과나무의 종에 따라 열리는 사과라는 열매의 모습이 다른 것이 바로 재가복지의 모습인 것이다. [

‘여민유지(與民由之)’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하다, 참여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더불 여(與), ‘나 자신, 사람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백성 민(民), ‘말미암다, 쓰다, 따르다. 행(行)하다, 꾀하다 등과 길 또는 도리(道理)’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미암을 유(由), ‘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갈 지(之) 가 합쳐진 사자성어입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나 자신과 함께 또는 사람들과 함께 도리(道理) 즉,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을 간다.’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생 사자성어’에서는 ‘시민과 더불어 옳은 길을 가다.’라고 해석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여민유지(與民由之)에 대해 살펴보다가 문득 “이 사자성어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그리고 why, how, what과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체계가 나올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민유지(與民由之)에서 民을 ‘나는’이라고 배치하고, 與 는 ‘함께’로 그리고 由之는 ‘하고 있는가 또는 가고 있는가’로 정리를 한 후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과 평천하(平天下)로 나누고, 이 평천하(平天下)를 why, how, what과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표가 만들어지더군요.

 

 

 

상기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평천하(平天下) 영역의 why, how, what을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 영역과 대비시켜보면, ‘1-9’까지 총 9가지의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 질문을 예시로 기술해 보면 아래와 같겠죠.

 

. 나는 나 자신과 무엇에 대해 여민유지 하고 있는가?

. 나는 가족(가정)과 어느 정도 여민유지 하고 있는가?

. 나는 동료와 어떻게 여민유지 하고 있는가?

. 나는 고객과 어디까지 여민유지 하고 있는가?

. 나는 지역사회와 왜 여민유지 하고 있는가?

 

그런데 상기와 같은 9가지 질문 외에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why, how, what 관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로부터 지역사회까지 그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입니다.(* '통일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래 '평천하(平天下)'에 관해 살펴보면서 그 답을 이끌어내보겠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와 같이 사회복지사이거나 혹은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는 여러분이 상기 총 10가지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이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체계적으로, 통일성 있는 논리적 답변을 완성한다면, 그 논리는 바로 나의, 여러분의 복지사상이요, 철학이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들더군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why, how, what과 연결되어진 ‘평천하(平天下)’에 대한 개념을 사회복지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더 뚜렷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평천하(平天下)는 사전적으로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함’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정(平定)은 ‘난리(亂離)를 평온(平穩)하게 진정(鎭靜)시키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럼 이 표현 중 난리(亂離)는 무엇을 뜻할까요. ‘전쟁(戰爭)ㆍ재해(災害) 등(等)으로 세상(世上)이 소란(騷亂)하고 질서(秩序)가 어지러워진 상태(狀態)’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자, 평천하(平天下)라는 단어에서 주 초점을 맞춰야 할 표현은 ‘세상이 소란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그럼 사회복지 관점에서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는 학술적 단어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결함에서 오는 문제‘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사회문제(社會問題)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즉, ‘평천하(平天下)’를 사회복지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사회문제를 평온하게 진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회복지 관점에서 ‘여민유지(與民由之)’는 ‘사회문제를 평온하게 진정시킨다는 도리(道理) 추구를 향해 시민과 함께 걸어 나감’이라는 사회복지사의, 사회복지현장가의 마인드와 자세를 일깨우는 사자성어라고 재해석할 수 있겠다는 것이 필자가 얻은 결론이랍니다.[끝]

전문 사회복지사, 훌륭한 사회복지사, 좋은 사회복지사, 리더와 같은 사회복지사 등과 같은 호칭을 들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복지관련 경력 혹은 경험이 풍부하거나, 제 기량이나 기술 등이 우수한 사람을 의미할까.

 

 

저의 관점에서는

 

'미시적으로는 국민 또는 지역주민의 삶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고, 거시적으로는 그러한 삶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 및 정책적 변화 구현 목적 의식이 뚜렷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사회복지현장에서 이와 같은 대의명분은 자꾸만 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노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 안정적으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 스트레스 없이 근로활동을 할 수 있는 직장 등'을 선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을 바탕으로 한 '권리'는 보장받고자 하지만, 이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자꾸만 무관심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현재 부여받은 직무를 수행함에 충실함이 '대의명분'을 충족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의 고객은 실체적으로는 아동 및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이겠지만, 형이상학적으로는 '사회문제', 즉 '변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민간사회복지현장에 '사회문제 예방 및 해소'를 위한 사회복지사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직원으로서의 사회복지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회복지시설의 대의명분은 희석되고, 사회복지사 개개인의 대의명분도 지워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깞습니다.

 

 

일반적 조직은 조직원에게 힘써 처리해야 할 '업무'를 부여한다면, 혁신적 조직은 '조직원에게 노력하며 함께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사회복지시설 또한 하나의 가치관과 신념으로 묶인 사람의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복지시설별로 그 존재의 이유, 가치, 목적, 대의명분 등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회복지현장에서는 점차 사업계획이라는 매뉴얼에 국한되어 양적 목표 달성이라는 양적인, 외형적인 동기부여만 강조되는 문화가 자리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의 존재에 의해 읍/면/동과 같은 지역공동체의, 시군구 및 시도와 같은 거시적 공동체의 사회문제가 과연 어느 정도 해소 또는 예방되고 있는 것일까요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개개인의 직무수행은 어떤 효과를 도출해내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사회복지계에게, 사회복지사에게 가장 큰 위험적 질문이 아닐까요.

 

기획을 함에 있어 '일반집단-위험집단-표적집단-클라이언트집단'으로 구분하고 있는 이유는, 그 기획사업의 확장성을 염두해두고 있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특정 소규모 집단 대상으로 사업의 가치를 입증해보인 상태에서 제도 및 정책화 단계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위험집단 또는 일반집단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사회복지현장에서는 클라이언트 또는 표적집단에서 기획사업을 멈춰버린는 경향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복지계는, 사회복지사는 '복지'를 초석으로 한 '사회변화'를 통해 '인류공동체의 발전 기여'라는 대의명분에 대해 어느정도의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과 신념을 공유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신념과 믿음의 공유 매카니즘 구현하고 있을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화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그 어떤 조직도 '사회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달리 표현하면, 관 차원의 복지행정시스템, 사회복지시설 그리고 사회복지사 개개인 모두가 독자생존할 수는 없다는 의미인 것이죠.

 

 

훌륭한 회사는 조직원들에게 단순히 매력적인 신제품을 만들라는 지시 대신 목적의식과 도전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분야와 영역을 아우르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게 합니다.

 

사이먼 사이넥은

 

'우리 인류가 그토록 잘 나갔던 이유는 자연계의 최강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크기와 힘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 인류가 성공한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를 형성하는 능력 덕택이다. 문화란 공통의 가치관과 믿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무리 안에서 형성된다. 다른 이들과 그 가치관과 믿음을 공유하면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회복지현장의 사회복지사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명예 혹은 업적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직위, 권위 등'을 추구하는 전문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세상의 발전적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대의명분 즉, 그 꿈을 향한 열정을 키우고 실천하는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입니다.

 

이것이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적 처우를 강화 및 보장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요, 안정장치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부와 명예'를 추구했던 새뮤얼 피어폰 랭리가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꿈꾸었던, 확신했던 윌버와 오빌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 사회복지사는 가슴 깊이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끝]

1. 들어가며

 

아래의 글은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 임건순 저>의 '겸애(兼愛)'편(p.382-412)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겸애(兼愛)'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자!>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에 '사회복지현장의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식, 즉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병리현상과 사회복지의 역할, 조직운영 방식, 리더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기준이 두루 녹아내려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사 여러분이 현재 처한 또는 고민하고 있는 사회문제 등에 대해 이 겸애(兼愛) 사상을 적용한다면, 그 원인과 해답을 즉, 사회복지사로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판단/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의 모습, 우리나라 사회문제와 그 원인, 사회복지현장의 문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 나의 삶의 자세 등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2. 묵자는 왜, 겸애(兼愛)를 강조했을까.

 

2-1. 세상이 '난(亂)'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드시 난(亂)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바로 다스릴 수 있다. 난(亂)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면,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이를 비유하자면 마치 의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과 같다.

 

 

난(亂)이란 단순한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라 이렇게 수직적인 질서에서 밑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거스르고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것, 거기서 비롯된 혼란과 무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 신하나 자식이 군주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난(亂)이다.
  • 자식이 자기만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부모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아우가 자기만 사랑하고 형을 사랑하지 않으면, 형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신하가 자기만 사랑하고 군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군주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이것이 바로 난(亂)이다.

 

 

반면에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 부모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으며, 군주가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은 것도 역시 천하의 난(亂)이다.
  • 부모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식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형이 자기만을 사랑하고 아우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우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군주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신하를 사랑하지 않으면 신하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또한 대등한 힘과 지위를 가진 주체들 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수장인 제후끼리, 가(家)의 수장인 대부끼리 서로 싸우는데 그것들도 모두 난(亂)이고, 그것의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음이다.

 

2-2. 세상이 '별애(別愛)'하기 때문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강한 자는 반드시 약한 자를 위협하고, 부유한 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고귀한 자는 반드시 천한 자를 무시하고, 영리한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속인다.

 

 

이런 난(亂)이 발생하는 원인은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런 병리 현상이 곧 별(別), 별애(別愛)인 것이다. 별(別)은 나누고 분별하는 것이다. 너와 나, 나와 타인을 나누고, 또 나의 이익과 나 아닌 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갈라서 세상을 보는 시각 내지 그런 시각을 가진 자가 꾀하는 극단적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3. 겸애(兼愛)로 세상을 바꾸자!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만들어내고 천하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다.

 

  • 만약 천하가 두루 서로 사랑하여 타인을 사랑하기를 제 몸을 사랑하듯 한다면 어찌 불효한 자가 있겠는가? 아버지와 형과 군주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한 짓을 하겠는가? 아우와 자식과 신하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게 하겠는가? 그러면 불효와 자애롭지 않음은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도적이 있겠는가?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과 같이 하는데 누가 훔치겠는가? 남의 몸 보기를 제 몸과 같이 하는데 누가 해치겠는가? 그러므로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는 대부와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제후가 있겠는가? 남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과 같이 한다면 누가 어지럽힐 것인가?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와 같이 한다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이처럼 무릇 천하에 환란과 찬탈, 원망, 한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과 같은 환경은 배타적인 자기 이익 챙기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까닭에 인자(仁者)는 그것이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르다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겠는가.

 

以兼相愛, 交相利之法昜之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써 바꾼다)

 

 

서로 자기 이익만을 꾀해서 상대를 해치고 핍박하는 별(別)의 상태를 ‘서로가 상대를 대등한 이익 향유의 주체로 인정’하는 겸(兼)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겸애(兼愛)의 정치와 행정, 업무를 담당할 현명한 이들을 뽑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 현명한 이들을 묶어낼 정치시스템과 공적 기구를 조직·구성하고 운영할 원리를 만들자. 그 공적 기구의 목적을 분명히 바로 세우자.

 

이렇게 세워진 겸애(兼愛)의 정치 공동체라면, 그리고 그 공동체의 수장이라면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도 제 몫을 누리도록 의무적으로 보호할 것이다. 거기에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현상의 근절, 공유되는 호혜적 이익의 확대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겸애(兼愛) 정치, 묵자가 말하는 의로운 정치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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