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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토박스프래임 2022.08.27 22:56 신고


    방문하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오토박스프래임 2022.08.30 01:45 신고


    방문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오토박스프래임 2022.08.30 23:48 신고


    서울은 추적추적 비가 옵니다~~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ㅎ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오토박스프래임 2022.08.31 23:52 신고


    유익한 내용 잘 보고 갑니다~^^ 태풍 올라온다는데 유의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강호철 2022.09.01 11:19 신고

      블로그도 방문해서 글도 남겨주시고... 태풍 피해도 걱정해주시고...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 오늘부터 제주는 태풍 간접 영향하에 들어가는데요...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근심 없이 추석 맞이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혹시

 

하기 싫은 것을...

두려운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등을...

 

행하지 않음을

진정한 자유라고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주시 외도에서

 

우리 인간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새로운 것을 접하고

다양한 행동을 취하는

기회와 조건 등과 조우하거나 동행하게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지극히 순리적인 것이요, 자연적인 것이다.

 

이에 미래의 삶에 대해 ()할

"...은 안 하겠다, ...은 하고 싶지 않다."

섣부르게 단정짓거나 결론짓지 말자.

 

이와 같은 선 긋기는

 

체험이라는, 학습이라는, 도전이라는 인생의 길을 부인하는 것이요,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삶이라는 자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하자, ~할 수 있다, ~해보자 등"과 같이

마음 갖는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말하는 것에서부터 

나 자신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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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3차원적 넓은 시야와 활동 영역 등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지만, 1인칭 관점의 시선만 유지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매사가 어렵고, 힘들다. 1차원적 혹은 2차원적 관점이 3차원적 관점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자유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자유만 봄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균등히 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행복 연구학자인 레오 보만스는 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는 결국 자신을 행복하게 하려는 수단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나와 당신의 삶의 여정에서 ‘여정이요, 수단인 행복’은 도대체 무엇일까.

 

성경 등과 같은 나침반 역할을 하는 그 어떤 것일까.

음식처럼 취하고 소비하는 만족의 대상일까.

다이아몬드나 금처럼 찾아서, 소유하는 가치적 존재일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다.

나의 사상과 그 사상에 의거한 자결권에 의한 선택과 행동 등에 대해 존중받아야 하고, 반면에 책임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이에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바로 ‘존엄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나 자신이 타인 혹은 공동체 등으로부터 존중을 받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혹은 공동체 등으로부터 존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나의 사고와 행동 등에 의해 타인과 나와 타인이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 희생을 의미하는 것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결국 삶은,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나와의 관계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나 자신만이 일으킬 수 있는 행복을 전파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를 주시옵소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세상모든행복, p41)

 

 

 

우리는 인생이란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어떤 파티든 반드시 입장료가 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의무와 책임이란 입장료이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면 파티장을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취워주거나 더 근사하게 꾸며주어야 한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이토록 멋진 무대를 만들어 놓았으니, 받은 만큼 뒷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세상모든행복, p41)

 

소득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소득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많은 소득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즉, 돈이 많으면 무조건 행복할 것 같아도, 더 많은 돈이 길라잡이가 되어 행복의 나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일단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다른 가치들에 눈을 돌린다. 자유, 삶의 질, 사람 간의 신뢰, 사회적 위치나 관계 같은 요소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소득은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줄 정도면 충분하다.

 

소득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 같은 조건, 비슷한 경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과 소득수준을 비교한다. 이때 남보다 조금만 뒤처지는 것 같아도 울적하고 기분이 상한다. 연봉 인상 소식에 기뻐하다가도 옆자리 동료의 연봉이 더 높다는 걸 알자마자 기분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https://blog.daum.net/swk3951/779

 

나 자신을 사랑하자~!

 

blog.daum.net

 

(*지금까지의 내용은 '세상 모든 행복(레오보만스 저)'의 p30-32에 실려 있는 '행복의 역설' 내용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그 이유를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인간은 의욕하는 것 그리고 창조하는 것에 의해서만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일까, '의욕과 창조'만이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것이...

 

일이 재미있으면 인생은 낙원이고, 일이 의무이면 인생은 지옥(고리키)인 법이다. 그래서 '의욕과 창조'가 '행복'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 아닐까. 달리표현하면, '진정으로 내가 바라고, 그 바램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행복이며, 행복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선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일(보봐르)'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의욕이 넘치고, 그 의욕을 바탕으로 그 무엇인가를 창조했더라도 그것 자체가 나에게만 의미있는 것이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성취한 것'이 아닐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욕과 창조'를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허지슨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얻는 행동이 최선이다.'고 하였고, 쥬베르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고통을 면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기의 이익을 아주 적게 생각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소유'라고 생각된다, 법정스님이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던 바로 그 '무소유'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착한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재앙을 내린다(명심보감).'고 강조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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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지방도 제1135호선)를 운전하던 중이었다.

문득, “나는 왜 앞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새삼 떠올랐다.

 

사고를 예방(: 앞차와의 충돌 방지 등)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빠르게 달리고 싶어서일까?!

이도 아니면,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일까?!

혹시, 누군가 눈앞에 있는 것이 싫어서일까?!

 

 

 

이유 없는 행위는 없지 않은가표면적이든, 내면적이든 한 인간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특정 행위에 대한 이유는 반드시 존재한다. 앞지르기를 극히 싫어하는 운전자가 존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 다시 한 번 더 심사숙고해보자.

 

나는 왜 운전 중에 반복적으로 앞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운전을 할 때 앞에 차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마치 갑갑한 골목길을 지나 탁트인 벌판에 직면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때문에 추월하는 것 아닐까.

 

단순히 운전하는 앞에 방해물이 없어서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뿐일까. 혹,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앞에 차가 없으면, 나는 왜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까.

 

 

 

내 생각대로 운전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이는 '거리에 관계 없이 나의 차 앞에 그 어떤 차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정 거리 이내에서 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운전을 즐길 수 있는 범주에서 내 앞에 차가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 내가 운전시에 앞지르기를 하는 이유는 편안히 운전을 즐길 수 있는 상태를 저해하는 차가 앞에 있기 때문 또는 이와 유사한 차량 소통 상태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안히 운전을 즐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간은 사고의 동물이다. 운전을 함에 있어서도 매 순간마다 운전자는 다양한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행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매일 하는 운전이지만, 운전하는 매 순간 행하는 사고의 내용은 달라진다. 어떤 때에는 스피드를 즐기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기도 하며, 어떤 때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고 싶어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싶기도 한다. 이처럼 운전을 함에 있어 편안함을 안겨다주는 매개는 다양하다. 그렇기에 '편안히 즐긴다.'는 것은 '향유한다, 영위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운전을 함에 있어 우리 인간이 즐기는, 내가 향유하고자 하는 그 원인과 행태 등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와 같이 다양한 모든 행태와 원인 등을 관통하는 주된 이유는 별도로 존재한다고 사료된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그 별도로 존재하는 그 이유를 자기 결정과 이런 결정에 대한 자기 존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운전을 하는 도중에 수시로 앞지르기를 행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결정한 그 어떤 내용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 결정한 내용을 최대한 즐기거나, 느끼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 중에 이런 자기결정과 자기존중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을 때, 과속, 주행 방해, 신호 위반, 충돌 등과 같은 교통법규위반 사례가 발생한다고 본다. (* 만약 이와 같은 추론이 맞다면, 교통질서유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주요 기준으로 적용해볼 필요성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운전자의 행태는 조직 및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의 행태와 유사하다고 사료된다.

 

, 인간 개개인은 조직에서, 사회에서 자기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자기 존중 구현을 끊임없이 그 내용이 합리적이냐, 윤리적이냐 등에 대한 분별은 다른 문제이며, 그 행태가 주도적이냐, 수동적이냐 또 다른 문제이다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특정 조직 및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는 나 자신이 그 삶 속에서 자기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자기 존중 구현을 일정 이상 충족시키고 있으면, 편안한, 행복한 조직 또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편한, 불행한 혹은 스트레스 받는 조직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온·오프라인의 일치이며, 그 핵심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융합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은 천연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물건, 제품을 만들어 내는 13차 산업혁명과 달리 상상력을 통해 거대한 혁신을 만들어 내는 시대임을 가리킨다.

 

 

그래서 21세기 리더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통찰, 자연과학적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등을 고루 갖춰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개척하는 21세기에서 전문성은 과거와 같이 지식의 양이 아니라 학습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복지사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뿐만이 아닌 새로운 통찰을 발휘해 바뀐 시대에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명심하자.

 

  •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고 상상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못 본 미래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 상기 글은 아래와 같이 '서울신문(2016.10.16)'에 'keyword'라는 주제 하에 실린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재작성된 것임.

 

4차 산업혁명 핵심은 상상력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고 상상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못 본 미래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13차 산업혁명이 천연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물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시기였다면 4차 산업혁명은 천연자원 대신 상상력을 통해 거대한 혁신을 만들어 내는 시대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우수한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 소프트파워를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 교육시스템을 통해 영역의 한계가 없는 디지털 세계로 나가야 한다.(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4차 혁명이 세계 부(富)의 절반 생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융합이다. 예를 들어 우버를 통해 전통 택시 산업과 택시 운전기사 일자리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전 세계 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인 50조 달러가 생산될 것이다. 이는 관련 일자리의 절반도 덩달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다.(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지식의 양보다 문제 해결 능력 중요

현재 초등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되면 그들의 절반 이상은 지금은 없는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새 직업들이 요구하는 전문성도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지식의 양이 아닌 학습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게 될 것이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높은 한국에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도래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암기 위주의 현 교육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4차 혁명 본질은 온·오프라인 일치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온·오프라인의 일치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서비스를 바꿔 가고 있다. 내 상황에 맞게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우버나 미리 주문할 것을 알고 맞춰 배달해 주는 아마존서비스도 하나의 예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뿐만이 아닌 새로운 통찰을 발휘해 바뀐 시대에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시대의 리더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통찰, 자연과학적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등을고루 갖춰야 한다.(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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