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아래의 글은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 임건순 저>의 '겸애(兼愛)'편(p.382-412)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겸애(兼愛)'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자!>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에 '사회복지현장의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식, 즉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병리현상과 사회복지의 역할, 조직운영 방식, 리더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기준이 두루 녹아내려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사 여러분이 현재 처한 또는 고민하고 있는 사회문제 등에 대해 이 겸애(兼愛) 사상을 적용한다면, 그 원인과 해답을 즉, 사회복지사로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판단/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의 모습, 우리나라 사회문제와 그 원인, 사회복지현장의 문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 나의 삶의 자세 등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2. 묵자는 왜, 겸애(兼愛)를 강조했을까.

 

2-1. 세상이 '난(亂)'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드시 난(亂)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바로 다스릴 수 있다. 난(亂)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면,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이를 비유하자면 마치 의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과 같다.

 

 

난(亂)이란 단순한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라 이렇게 수직적인 질서에서 밑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거스르고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것, 거기서 비롯된 혼란과 무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 신하나 자식이 군주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난(亂)이다.
  • 자식이 자기만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부모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아우가 자기만 사랑하고 형을 사랑하지 않으면, 형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신하가 자기만 사랑하고 군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군주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이것이 바로 난(亂)이다.

 

 

반면에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 부모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으며, 군주가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은 것도 역시 천하의 난(亂)이다.
  • 부모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식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형이 자기만을 사랑하고 아우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우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군주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신하를 사랑하지 않으면 신하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또한 대등한 힘과 지위를 가진 주체들 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수장인 제후끼리, 가(家)의 수장인 대부끼리 서로 싸우는데 그것들도 모두 난(亂)이고, 그것의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음이다.

 

2-2. 세상이 '별애(別愛)'하기 때문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강한 자는 반드시 약한 자를 위협하고, 부유한 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고귀한 자는 반드시 천한 자를 무시하고, 영리한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속인다.

 

 

이런 난(亂)이 발생하는 원인은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런 병리 현상이 곧 별(別), 별애(別愛)인 것이다. 별(別)은 나누고 분별하는 것이다. 너와 나, 나와 타인을 나누고, 또 나의 이익과 나 아닌 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갈라서 세상을 보는 시각 내지 그런 시각을 가진 자가 꾀하는 극단적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3. 겸애(兼愛)로 세상을 바꾸자!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만들어내고 천하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다.

 

  • 만약 천하가 두루 서로 사랑하여 타인을 사랑하기를 제 몸을 사랑하듯 한다면 어찌 불효한 자가 있겠는가? 아버지와 형과 군주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한 짓을 하겠는가? 아우와 자식과 신하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게 하겠는가? 그러면 불효와 자애롭지 않음은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도적이 있겠는가?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과 같이 하는데 누가 훔치겠는가? 남의 몸 보기를 제 몸과 같이 하는데 누가 해치겠는가? 그러므로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는 대부와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제후가 있겠는가? 남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과 같이 한다면 누가 어지럽힐 것인가?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와 같이 한다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이처럼 무릇 천하에 환란과 찬탈, 원망, 한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과 같은 환경은 배타적인 자기 이익 챙기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까닭에 인자(仁者)는 그것이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르다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겠는가.

 

以兼相愛, 交相利之法昜之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써 바꾼다)

 

 

서로 자기 이익만을 꾀해서 상대를 해치고 핍박하는 별(別)의 상태를 ‘서로가 상대를 대등한 이익 향유의 주체로 인정’하는 겸(兼)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겸애(兼愛)의 정치와 행정, 업무를 담당할 현명한 이들을 뽑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 현명한 이들을 묶어낼 정치시스템과 공적 기구를 조직·구성하고 운영할 원리를 만들자. 그 공적 기구의 목적을 분명히 바로 세우자.

 

이렇게 세워진 겸애(兼愛)의 정치 공동체라면, 그리고 그 공동체의 수장이라면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도 제 몫을 누리도록 의무적으로 보호할 것이다. 거기에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현상의 근절, 공유되는 호혜적 이익의 확대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겸애(兼愛) 정치, 묵자가 말하는 의로운 정치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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