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삶 구현과/인간다운 나 (인권-권리)

권리(Light)에 관한 Tour!

강호철 2013. 9. 21. 16:27

 

(*한겨레 : 2013.05.28. / 조효제 교수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에서 발췌 및 인용)

 

권리(라이트)라는 말은 매우 복잡하다. 서양 사람에게도 라이트 개념은 어렵다. 여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동아시아 사람에게 라이트는 더 어렵다. 번역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진 탓이다.

 

영어로 라이트(right), 네덜란드어로 레흐트(regt), 독일어로 레히트(recht), 프랑스어로 드루아(droit)라는 이 말은 고대로부터 객관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어떤 상태를 뜻하는 어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질서, 곧 선이 이기고 악이 단죄되는 상태를 디카이온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라이트의 의미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라는 주관적 의미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14세기의 오컴 혹은 17세기의 홉스·로크·흐로티위스(그로티우스)가 라이트를 그런 식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보면 라이트가 인간 행위의 정당성과 그 한계, 그리고 제도와 정부의 구조 및 형태를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을 어떻게, 어느 정도나 대우하느냐를 정하는 존재론적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독일어나 프랑스어와는 달리 영어 라이트에는 이라는 의미가 없다.

 

동아시아에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때 이 라이트라는 단어가 워낙 핵심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에 이 말을 피해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서양 사이의 크고 작은 오해와 충돌이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이질적인 외래 문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대에 나왔던 여러 사전을 보면 라이트가 무척 다양한 한자어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엔 염직(廉直) 또는 정직이라 하다, 아예 음역으로 표시하기도 했고, 그다음엔 도리·당연·면허·권 등으로 옮겼다. 그 뒤 진직(眞直권의(權義공평·공도(公道진실·조리(條理권세·통의(通義) 등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난해한 단어들이 여럿 등장해 서로 겨루게 된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권리(權利)라는 말은 1885년 처음으로 사전에 나타난다. 라이트를 덕권(德權천권(天權법권(法權권리 등의 의미가 섞인 복합개념으로 인식한 것이다. 같은 해 출간된 또 다른 사전에서는 권리(權理)라는 번역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결국 권리’(權利) 혹은 이 라이트의 번역어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말 역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원래 도덕적이고 반권력적이고 장중한 어감을 가진 라이트개념이 권력과 이익과 힘의 느낌을 주는 권리로 번역되면서 라이트의 본뜻이 왜곡되어 전달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리라는 번역어가 188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최경옥의 설명을 따르면, 처음에는 <실록>과 같은 공식문헌에서 조금씩 사용하다 1890년대 들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민소학독본>칭호는 각각 다르나 상대하는 권리는 차등이 없느니라라는 표현이 나오고, <서유견문>에도 권리란 말이 등장한다. 1896<독립신문>에는 님군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요, 백성에게 권리를 주는 것이니라는 표현도 보인다.

 

인권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라이트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을 들어보자.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 쪽에서는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차별받아선 안 되는 것이 인권의 원칙이라고 본다. 그런 입장이 정당하며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차별금지가 정당하고 옳기 때문에, 당연히 차별받는 사람들이 차별금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이유 없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는 원칙 자체를 아주 협소하게 해석한다. 물론 이들이 모든 차별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나 행동만이 차별금지 원칙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남한 체제를 비판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은 애초 차별금지 원칙을 적용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마찬가지 논리로, 동성애 지향을 가진 사람 역시 애초 차별금지 원칙을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차별을 받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이런 식의 선별적 가치관은 원칙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라는 인권의 기본 전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이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식민지 주민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도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허위의식과 연결된다. ‘라이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 권리 운운하는 건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권운동에서도 라이트에 내재된 두 측면이 동시에 발현되곤 한다. 첫째, ‘정당하고 옳은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견·발굴되므로 인권운동은 필연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인권을 윤리적인 어떤 절실한 포부로 이해할 때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와 비정상과 억압을 무너뜨릴 만병통치약으로 인권을 호명하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의 인권에서는 입법화와 제도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긴다. 어떤 근거로 주장하는지, 그 요구를 들어줄 의무를 지닌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규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리의 객관적 규범과 주관적 요구자격의 결합, 이 점이 인권 개념을 여타 인도적 개념들과 구분하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