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80. '복지 문명'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자!

강호철 2016. 8. 19. 12:16



문화(文化)라 함은 사전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반면에 문명(文明)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문화와 문명의 차이점은 사회(또는 사회 구성원)’인류가 될 것이다. 특정 사회에 국한되어진 것이 문화(개별성, 특별성 보유)이고, 전 인류를 포괄하는 것이 곧 문명(보편성, 공공성 보유)이 될 것이다.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2013)’라는 책을 보면 천하주의의 도량은 넓어서 하나의 종족이나 민족, 국가를 최고의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그것의 관심은 늘 온 세상의 인류였다. 이것이 바로 문명 제국의 커다란 기상이자 구도다. , 인류 전체의 문명적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기 한 몸의 이익에 국한된 문화적 자각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눈을 둔 문명적 자각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내가 주장하는 사회복지사는 사상가, 전문가, 실천가이다.’라는 명제와 관련해서 사회복지사는 사상가라는 측면을 아주 명료하게 그 지향점을 잘 뒷 받침해주는 설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서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차별적 능력을 갖춘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차별적 사업으로 설계되어진 복지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진력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지난 20여년의 노력이 타 사회복지사에게, 타 복지시설에, 지역사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고자 하니 그 미미함에 반성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 이유는 나를 중심으로, 내가 근무하는 복지관을 중심으로 또는 복지관이 소재한 지역과 고객을 정점으로 특화성을 추구한 것은 문명보다는 문화 조성에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기 폄하적 생각일까. 아니다. 문화든 문명이든 모두 궁극적으로 정체성(identity)문제로 향하는데, 문화적 정체성은 특수하고 통상 우리 것을 자기변호의 이유로 삼는 반면, 문명적 정체성은 보편적이고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인류 전체에 적합한 보편적이고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인류 전체에 적합한 보편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 문명이 ‘(인류 행복 측면에서) 무엇이 좋은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문화는 무엇이 우리 것인가에 관심을 두며, 오직 우리타자를 구별하여 우리에 대한 정체성을 실현하고 자신의 문화와 역사의 근원 감각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물론, 문화적 관점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명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문화만을 고집했을 때 그 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은 매우 부정적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역사적 결과가 존재하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문화에 치중하다보면, ‘우리의 것이기만 하면 가치 측면에서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폐쇄적인 적과 아의 구분론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문화는 결코 인류적 측면에서 효과적인 가치정당성을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도 세계 제일이 되고자 했고 강국의 꿈을 꿨지만 결국에는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고 말았으며, 일본도 경제가 비상했던 1970년대에 역시 일본 제일을 꿈꿨지만 1990년대 초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적 쇠퇴에 들어섰고 오늘날까지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의 독일과 일본에는 군사력, 경제력, 금융력만 있었고 보편적 문명이 결여된 상태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할 만한 문명적 가치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양은 17세기부터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는데, 가장 앞섰던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모두 해상무역과 패권이라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명정신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결국 오래가지 못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19세기, 20세기에 한 세기씩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군사력과 물질적 실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근대 문명에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복지계를 들여다 보며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에서 또는 각 시도별 소재 사회복지시설에서 정책/제도적으로, 사회사업 또는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전개되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은 문화적 관점일까, 문명적 관점일까. ,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우리나라 국민만을 위한 것일까, 우리 사회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사회복지사업은 계약을 맺고 있는 특정 고객만을 위한 것일까, 사회복지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각 개인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복지사회구현 또는 복지국가건설이라는 표현은 문화를 염두 한 표현일까, 아니면 문명을 지향하고 있는 표현일까.


내가 보기에는 문화적 관점에 포커스 맞춰져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맞는다면, 우리나라의 또는 사회복지시설의 복지 수준은 문화라는 테두리에 한정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직업문화와 충돌을 하는 상태로 가게 될 것이다. 실 예로 현재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문화복지문화가 충돌하는 양상 속에 있지 않은가. 이런 내부적 문화 충돌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 복지가 세계의 복지를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고, 항상 외국의 복지를 수입하는 복지 변방국으로 위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21세기 우리나라 사회복지계는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버리고 복지 문명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해야 된다는 것이다. 복지 문명 구현이라는 공공적,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시설이 그리고 사회복지정책/제도가 어떤 형태로 그 기능과 역할을 궤도 수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체계적인 방향을 정립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루소는 만인은 평등한 존재인데 사회문화(: 소유 제도 등)가 인간을 불평등 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시민사회 조성을 강조한 것으로 즉, '만인의 의지'보다 '일반의지'를 강조하면서 '만인에 의한 복지 공동체 구현'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복지문명을 조성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발전과 복지의 지리멸렬한 다툼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