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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省察)과 자성(自省) 하에 화해(和解)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3만불 달성 불가능?!

강호철 2015. 9. 3. 13:05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탓'하는 것이고

내가 가장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탓'하는 것이다.

 

'남탓'하는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뒷면에 '나는 문제없고 상대방은 잘못이다'라는 것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례 2015년 9월2일자 인터넷신문을 보면, <김무성  “노조가 쇠파이프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 됐을 것”>이라는 제목 하에 아래와 같은 기사 내용이 실려 있었다.

 

연일 노동시장 개편의 당위성을 강조해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노동조합이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됐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대기업 노조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정부·여당이 노동정책 실패를 노조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작심한 듯이 노조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노조 가입자 수는 10%에 불과하지만 영향력은 막대하다”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노조, 귀족노조가 매년 불법 파업을 일삼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공권력을 투입하면 (노조가) 쇠파이프로 (전경들을) 두들겨팼다. 공권력이 그들에 대해 대응하지 못해 2만불에서 10년을 고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그런 일이 없없으면 우리는 3만불을 넘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최근 조선업계 최초로 공동파업을 선언한 조선업체들을 겨냥해 “그 회사가 망하면 괜찮은데 <시엔엔>(CNN)에 연일 쇠파이프 보도되는데, 어느 나라가 투자하겠느냐”며 “우리 사회 발전에 끼친 패악은 엄청나다. 더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서보미 기자)

 

상기 기사에서

 

“노조 가입자 수는 10%에 불과하지만 영향력은 막대하다”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노조, 귀족노조가 매년 불법 파업을 일삼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공권력을 투입하면 (노조가) 쇠파이프로 (전경들을) 두들겨팼다. 공권력이 그들에 대해 대응하지 못해 2만불에서 10년을 고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그런 일이 없없으면 우리는 3만불을 넘었다”

 

라는 문제제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한 원활한 이해 도모차원에서 시선을 달리하여 우리 모두 자녀들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 번 돌이켜보자.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녀들에게 '친구와 싸웠다면 화해하라'고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과하라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안 가르켜줄뿐더러, 왜 화해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가르켜주지도 않는다. 그냥 일방향적 가르침 형태로 '화해하라, 사과하라'라고 할 뿐이다.

 

'화해(和解)'라는 단어는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안 좋은 감정을 서로 풀어내지 못하면 싸웠던 양자(兩者)는 계속 불편한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상태는 결과적으로 양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하에 나는 우리나라가 '소득 3만불'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화해(和解)'를 만들어내지 못했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화해(和解)'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싸웠던 양자(兩者)중에 그 원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사과(謝過)'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내가 배운 인생자세는 <'화해(和解)'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다가섬, 포용함 등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달리 말하면, 화해(和解)를 이끌어내지 못했을때 싸웠던 양자(兩者)가 직면하게될 위험성을 인지하는 사람이 화해(和解)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행하여 그 상황을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관계적 측면에서 보면, 현자(賢者), 강자(强者)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자(賢者)가 아니더라도, 약자(弱者)이더라도 이런 사실을 인지도하고 행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최종적 상황을 도출하기는 현자(賢者) 또는 강자(强者)와 비교해서 결코 쉽지 않다. 역사를 살펴봐도 '전쟁의 종료'는 강국(强國)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약소국(弱小國)에서 내뱉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약소국(弱小國)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은 '항복(降伏)'밖에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현자(賢者)는 바로 우리나라 정계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고(그 중에서도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강자(强者)는 자본(資本)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싸움에 이은 화해(和解)는 '다가섬, 포용함 등'이 바탕이 되어야하며, 이와 같은 다가섬, 포용은 성찰(省察)과 자성(自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싸움 상대의 '잘못에 대한 논(論)에 따른 시인이나 일방적 희생(犧牲) 또는 물러섬 등'이 바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 하에 이 기사를 읽으면서 답답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지금은 책임(責任) 여부를 논하는 것보다 "왜 화해(和解)를 이끌어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나로부터의 성찰(省察)이 필요하고 자성(自省)의 외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 3만불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만약, 이와 같은 화해(和解)를 앞으로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가정한다면, 노조 역시 앞으로도 계속 쇠파이프를 휘두른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본 기사 표현대로라면). 그렇다면 결국 우리나라 국민소득 3만불 달성은 결코 달성하지 못할 목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