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61. 사회복지사와 공자(孔子)의 대화

강호철 2015. 7. 14. 21:50

"사회복지 현장가 여러분은 '사회복지사'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에 대해 사회복지 사상가요, 전문가요, 실천가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정의가 바른 것인지에 대해 종종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구심을 논어(論語) 속의 공자(孔子)와 대화를 통해 잠시 해소해 보고자 노력해보았답니다. 솔직히, 아래와 같은 공자와의 대화가 어렵긴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즐거웠답니다. 개인적 의구심이 해소되었거든요. 아주 명료하게요(ㅋㅋㅋ 저의 주관적 생각인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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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자(孔子)에게 저는 사회복지사는 사상가(思想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이에 공자(孔子)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말하였다.

 

군자(유가 사상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 막스베버는 이 표현을 전문성과 직업적 윤리의 거부의 표현으로 오해하였다. 그 이유는 베버는 직업윤리를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베버 입장에서 보면 ()’는 바로 전문성(專門性)’이었고, 동양사상적 측면에서 불기(不器)’라는 것은 이와 같은 전문성(專門性)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곧 비합리성과 통한다고 보았던 것이죠.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상기 공자(孔子)의 말은 전문성(專門性)을 거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문성(專門性)의 강화를 더욱 더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 ‘군자불기(君子不器)’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로 제한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군자는 그릇에 만족하거나 또는 그릇에 국한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공자(孔子)사회복지사는 사상가이다라는 저의 질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화답한 이유는 사회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스스로 실천가 또는 전문가로만 안주하려 하지 말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지향하는 사상가가 되기 위해 항상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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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공자(孔子)에게 저는 사회복지사는 전문가(專門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질문하였다.

 

이에 공자(孔子)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보편적으로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라고 해석되어지고 있으나, 이와는 달리 (: 이론적 사고)하되 사(: 실천적(경험적) 사고)하지 않으면 어둡고, ()하되 학()하지 않으면 위태롭다(신영복)’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저는 후자의 해석이 사회복지사는 전문가(專門家)이다를 잘 설명해주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신영복 저/p181)’<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現場性)입니다. 그리고 모든 현장은 구체적이고 조건적이며 우연적입니다. 한 마리도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지(經驗知)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 ()이 보편적인 것임에 비하여 사()는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捨象)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이고,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학교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는 교수가 현실에 어두운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경험에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현장 활동가들은 대단히 완고합니다.> 라는 구절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사 여러분 또한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이 크면 되었지, 사회복지현장에서 열심히 고객에게 다가서면 되지 무엇 때문에 ○○○한 이론을 논하고, ○○○한 방법론 등을 논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형식에 너무 치우진 것이 아닙니까?”하고 주장하는 사회복지 동료 현장가를 만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면 상호간에 기분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이와 관련해서는 質勝文則野(질승문즉야) 文勝質則史(문승질즉사) 文質彬彬然後君子(문질빈빈연후군자)”라는 공자(孔子)의 말을 연동지어서 생각해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해석하면 (: 내용)이 문(: 형식)보다 나으면 야()하고, ()이 질()보다 나으면 성실하지 못하니(()하니), ()과 질()이 어울려 아름다워야 군자(君子)가 되느니라.’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 사회복지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라는 말처럼 단순히 ()이 먼저이냐, ()이 우선인가하는 것을 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 상호간에 실질적으로 쟁()을 즐겨야 할 부분은 바로 문질빈빈연후군자(文質彬彬然後君子: ()과 질()이 어울려 아름다워야 군자(君子)가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문()과 질()의 아름다운 어우러짐 상태인가, 어떤 방법이 진정한 어우러짐의 자세인가?” 등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발전적 대화가 필요한 것이죠.

 

그렇지만 제가 느끼는 복지 현장에서의 사회복지사는 이와 같은 토론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질빈빈연후(文質彬彬然)’를 추구하기 보다는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 또는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중의 하나를 택하여 그 안에서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하거나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듯 하거든요.

 

결론적으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그리고 사회복지사라는 직종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개개인 사회복지분야의 전문가(專門家)라는 인정을 고객으로부터, 지역사회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받으려고 한다면, 상기 내용에 대한 토론과 고민을 통해 질()과 문()의 어우러짐을 반드시 추구해 나가야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로 質勝文則野(질승문즉야)’ 또는 文勝質則史(문승질즉사)’ 상태를 만들어서도 안 되고, 이와 같은 상태를 방치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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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공자(孔子)에게 저는 사회복지사는 실천가(實踐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질문하였다.

 

이에 공자(孔子)‘ "君子謀道不謀食(군자모도불모식). 君子憂道不憂貧(군자우도불우빈)“이라고 말하였다.

 

, ‘군자(君子)는 도()를 추구할 따름이며 결코 식()이나 빈()을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네요.

 

이 말은 보편적으로 청빈(淸貧)’()’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군자(君子)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 ‘사회복지사가 실천가로서 지향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 그리고 '()’ 에 대한 의미를 한 번 재음미해봅시다.

 

사전적으로 모()(지략, 계책), 도모(모색)하다, 의논(상의)하다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 도리(이치), 근원, 깨닫다, 가르치다, 인도하다 등의 의미를 그리고 '()''근심하다, 두려워하다, 가엾게 여기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君子謀道不謀食. 君子憂道不憂貧을 매슬로우 5단계 욕구와 연계를 통해서 살펴보면 군자(君子)는 도리(이치, 근원)을 도모하지 식()이나 빈()을 걱정하지 않는다.’ , ‘군자(君子)는 이웃의 식()이나 빈()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본질적인 부분 즉 이웃의 도리(이치, 근원) 추구를 도모해야 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사회복지사의 복지현장에서의 실천 방향을 정립해보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社會福祉士 謀道不謀食 : 사회복지사는 이웃의 도리(이치, 근원) 추구를 도모한다. , 매슬로우 욕구 대비 사회복지사는 이웃의 성장욕구(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추구를 도모해야 한다.

 

社會福祉士 憂道不憂貧 : 사회복지사는 이웃의 식()이나 빈()을 걱정하지 않는다. , 매슬로우 욕구 대비 사회복지사는 이웃의 결핍욕구(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추구에 집중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복지현장의 사회복지사는 謀道(모도)憂道(우도)’를 어떻게 추구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공자는 知之者(지지자) 不如好之者(불여호지자) 好之者(호지자) 不如樂之者(불여낙지자)”라고 말하였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이 말은 사회복지사는 실천가(實踐家)이다.’와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요.

 

저는 여기서 ()’(: 살피고 배움)’, ‘()’(: 실천)’을 그리고 ()’(: 뜻이 맞아 사이좋음)’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공자가 지()는 지인(知人)이라고 하였으며, ()은 애인(愛人)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인(知人)사람을 안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알고자 한다.’라는 뜻을 지니며, 애인(愛人)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로스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가페 차원의 사랑() , 인간애(人間愛)를 뜻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애(人間愛)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지()의 깨달음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해야하고, 그 실천을 통해 인간 상호간에 즐거움을 생성(生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사회복지사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는 사회복지사의 고객에 대한 ()’으로, ‘()’는 사회복지사의 고객을 위한 (: 실천)’으로, ‘()’은 사회복지사의 고객과 함께 추구하는 (: 뜻이 맞아 사이좋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회복지사는 고객과의 관계 속에서 학()과 습()을 바탕으로 화()를 추구하는 실천가(實踐家)이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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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공자(孔子)에게 “‘사회복지사는 사상가이며, 전문가이고, 실천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도 될까요?”하고 질문을 하였다.

 

이에 공자(孔子)君子(군자) 和而不同(화이부동), 小人(소인) 同而不和(동이불화)’라고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小人)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를, 밖으로는 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실은 화목하지 못하는 소인의 세계와 대비시켜 군자의 철학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자(孔子)의 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더군요.

 

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정치적으로 아주 혼란했던 때였던 만큼 공자는 인()의 실천을 위해 군자가 사회 내부의 통합을 위한 화합과 조화에 힘써, 절대평등이라는 이념 밑에서 사회내부의 불화와 혼란을 부추기는 소인의 세계와 맞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송두율).

 

우리말 가운데 엇비슷하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 말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면 엇비슷은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 말에 기독교와 불교를 엇비슷하게 보는 한국인의 의식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어긋나고 비슷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인 특유의 포용의식의 상징이죠. 우리 문화에는 21세기 다원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공존합니다. 엇비슷하다는 말은 아시아적 화이부동(和而不同)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이어령)”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 ()는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원리이고, ()은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원리이다. 이에 군자(君子)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小人) 동이불화(同而不和)’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신영복).

 

저는 상기 해석들을 읽으면서 인간은 (: 영혼)과 혼(: 생각 또는 마음) 그리고 신체(身體)’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달리 설명하면, 인간을 구성하는 이 세 가지의 조건이 서로 화(: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하면서 동(: 같음, 일치)하지 않음으로서 인간()‘을 존재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그럼 사회복지사는 사상(思想), 전문(專門), 실천(實踐)으로 구성 된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것이 되겠죠. 이는 곧 사회복지사는 사상(思想), 전문(專門), 실천(實踐)’ 중 어느 하나로 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엇비슷한3가지의 모습이 적절히 화()해야 그 가치가 지() 단계를 넘어 호() 단계에 이르고 결국 낙() 단계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사회복지사는 사회 문제를 인간 삶의 문제로 지()하고, ()하며, ()하면서 해결하는 복지 현장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강조한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지기), 患不知人也(환불지인야)‘의 모습(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다) 속에 成人之美(성인지미: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다.)’를 추구하는 복지현장의 존재(存在)인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