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58. 무일(無逸)을 통해 변화를 도모합시다!

강호철 2015. 6. 23. 17:47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저)~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숙연해지게 만드네요.

 

이 생각, 저 생각에 빠르게 읽어내려가지 못해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 반면에 사고의 폭은 넓어지고 그 깊이는 조금씩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덕분에 한자 공부도 다시 하고 있고요)

 

아래의 글은 본 책의 2장 '오래된 詩와 言'(P51-84)을 읽고 재정리해본 것입니다. 

 

 

 

 

군자는 무일(無逸: 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勞動)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대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서경(書經)의 주공편 무일(無逸))

 

이 글은 형인 무왕이 죽은 후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주나라 창건 초기의 어려움을 도맡아 다스리던 주공이 조카 성왕을 위해 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무일(無逸) , '불편함'이 중요한 이유는 무일(無逸)이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럼 무일(無逸) 사상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자 노력해야 할까요?

 

첫째,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산노동과 유리된 신세대 문화의 비생산적 정서와 소비주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상품미학, 가상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복지현장에는,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에는 이와 같은 풍토가 만연해있지 않은지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또한 고객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이와 같은 사고에 바탕을 두고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둘째, 생산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소비하는 사람을 우러러보는 우리들의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 한 개인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고뇌와 무관한 소비 행위에 의해 과연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고뇌와 무관한 소비 행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는 곧 '소비문화에 의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가치 부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점차 사회복지서비스도 소비문화형태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바우처사업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혹,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상품'화 되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간간히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문제제기가 더욱 더 만연화되겠죠?! 

 

셋째, 노인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을 반성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농본문화에서 유목문화(도시 유목민)로 전환되는 과정이 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시 유목 문화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노인들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현상이 곧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로(早老)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약 3만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는 그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노년층의 비율이 무려 다섯 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인류의 폭발적 인구 증가가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합니다. , 나이 든 세대의 경험과 역할이 현생인류의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지요. ‘할머니들은 자기의 자녀가 아니라 자기의 자녀가 낳은 자녀 즉 손자손녀를 돌보고 자녀 양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번창시켰다할머니 가설을 상기해봐야 합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면 이와 같은 사회 문제 해결 방향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시 유목 문화에서 확실히 노인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어질 수 밖에 없으니... 그러나 모든 동물은 '회귀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또한 그 본능에서 예외적이라고 할 수 없겠죠. 그렇다면 회귀는 단순히 '되돌아 옴' 뿐만 아니라 '안식처, 터전(반석)'이라는 기능과 역할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곧 노인문제는 노인 개개인에 포커스 맞춰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인류의 성장 체계는 가정의 성장 체계와 사회의 성장 체계와 동일하다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사회복지의 제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넷째, 무일(無逸)을 통한 변화와 미래는 어디서 출발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변화와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복지현장을 보면, 고객이 무일(無逸)을 원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뭐랄까~ 사회복지서비스 제공기관에 가면 나를 위한 풀 서비스가 완변히 구비되어져 있고 이와 같은 서비스를 원하는 시점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보편복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복지를 실현하고자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자본주의시대이고 물질주의시대에 걸맞게 이 두가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 하에서  삶의 질 또는 행복도를 향상시키는 보편복지정책이 과연 실현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끝]

 

* 이에 대한 생각은 계속 정리, 보완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