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공동체 조성을 위하여/건강한 지역사회

공유가치(CSV)창조를 실천하는 독일

강호철 2013. 9. 2. 13:13

 

 

독일 동남부에 위치한 인구 5만명 중소도시 라벤스부르크(Ravensburg). 작은 서점과 카페, 대합실이 전부인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작은 도시다. 기차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쿤스트할레(kunst-halle미술관)`에 데려 다 달라고 하자 `아이디어를 위한 집(Haus fuer Ideen)`이라는 간판이 붙은 하얀 건물 앞에 내려준다. 직원 60명을 거느린 중소기업 콜롬부스(Columbus) 그룹 사옥이자 2004년 라벤스부르크에 최초로 문을 연 현대미술관이다.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택시를 타고 `라벤스부르크 쿤스트할레`만 외치면 다 안다"고 자랑하듯 얘기한 직원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콜롬부스 그룹의 메세나 활동은 독일 내에서도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소프트웨어와 정보통신(IT) 장비 리싱, 이메일 마케팅 등을 기반으로 하는 중소기업이 매년 25만유로(4억원)`콜롬부스 예술재단(Columbus Art Foundation)` 운영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술 분야 지원에 특화한 이 재단의 운영으로 콜롬부스 그룹은 2006년 독일기업협회가 수여하는 `독일문화지원상(Deutscher Kulturfoerderpreis)`도 수상했다.

 

콜롬부스 그룹이 재단을 세운 것은 회사 설립 4년 만인 1995. 미술 전공인 큰딸에게 학자금을 대던 회사 설립자 괴츠 바게너(Goetz Wagener62)가 딸이 졸업한 후 "내 자식 말고 다른 집 자식들도 돕자"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일정한 예산도 정해져 있지 않았던 재단 운영 자금은 회사 성장과 더불어 조금씩 늘어났고 2006년부터는 매년 25만유로를 책정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회사는 이 금액을 줄이지 않았다. 사옥 1층에 위치한 1000규모의 `라벤스부르크 쿤스트할레` 전시장에서는 매년 3~4회 정도 현대미술 전시가 열린다.

 

9~10주 동안 전시를 열고 5주 쉬는 식이다. 입장료를 일절 받지 않는 전시장에는 한 번 전시가 열릴 때마다 3000명 정도 관람객이 찾는다. 1년이면 적게는 15000명에서 2만여 명이 `라벤스부르크 쿤스트할레`를 찾는 것이다. 5만명이 안 되는 라벤스부르크시 인구를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술관과 협약을 맺은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은 전교생 900여 명이 1년에 최소 한 번 이상씩 미술관을 찾고 있다. 5~11세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둘러보고 거기서 느낀 점을 다시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해내는 수업도 진행된다. 미술관 운영을 통해 지역 사회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콜롬부스 그룹의 문화 지원 사업은 단순히 전시장 운영에서 머물지 않는다. 재단의 메세나 활동 원칙은 발견, 지원, 전시, 수집 등 네 가지로, 활동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단연 `지원` 분야다. 매년 아티스트 1명을 선정해 지원금 3만유로를 전달하고, 전시공간 제공과 카탈로그 제작 등 방법으로도 아티스트를 돕는다.

 

지원기간 1년이 끝난 후에도 아티스트가 미술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해준다는 것이 재단 원칙이다. 재단에서 지원한 젊은 아티스트 중에는 이소연(40)이라는 한국인 아티스트도 있었다. 반 덴 베르크 씨는 "굳이 마케팅 도구로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예술 후원은 저절로 회사 이미지를 개선시켜준다"면서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회사 내 소통을 돕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신문, 201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