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photo diary

제주 마을1 - 물메 마을 수산리

강호철 2021. 2. 22. 17:32

 

1. 계획을 수립하다.

 

제주도민이 제일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제주도는 몇 개의 마을로 되어져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 답해야 할지 아니면 옛날 마을 수별로 답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점도 있지만, 사투리가 표준화되면서, 행정체계가 4개 시군에서 2개의 행정시로 개편되면서 도민이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마을 이름과 행정마을 이름이 서로 다른 탓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조차도 제주의 모든 마을 지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필자 역시 같은 입장이다.

 

행정구역으로만 놓고 보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아래 표와 같이 31개의 동()7개의 읍() 그리고 5개 면() 등 총 43개 읍면동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 정도 차원에서 제주도의 마을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면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상기 행정구역중에서 애월읍은 총 26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각 리별로 전통적 마을인 동()이 존재하는데, 자그만치 그 수가 총 66개동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반영한다면, 제주도에는 43개의 행정구역상 마을이 현존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백 개의 전통 마을이 그 이면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행정구역상의 43개 읍면동을 기준으로 각 마을 풍경과 그 안의 제주도민의 삶의 모습 그리고 전통적 마을 형태 등을 탐방하는 시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음, 한 달에 1개 읍면동을 돌아본다면 대략 4년이, 한 달에 2개 읍면동을 방문한다면 대략 2년이 소요되는 계획을 결심한 것이다.

 

 

2. 실행에 옮기다.

 

 

2-1. 그 첫 번째 순서, 물(水)메(山) 마을 (애월읍) 수산리(水山里)

 

제주에는 수산리가 2곳이 있다. 한라산을 기준으로 제주시 서쪽 애월읍에 소재하고 수산(水山)리가 있고, 이와 달리 한라산을 기준으로 서귀포시 동쪽 성산읍에 소재하는 수산(水山)리가 있다.(* 성산읍 수산리는 당초 수산(首山)에서 수산(水山)으로 개명된 것임.)

 

< 출처: 밭담길에서 만나는 제주(웹진), 제주특별자치도>

 

물메 마을인 수산리는 애월읍 26개리(66개동) 중 하나로 4개의 동(), 즉 본동(本洞), 당동(堂洞), 예원동(禮園洞), 하동(下洞)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수산리는 해안가에서 좀 떨어진 해발 65m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서, 대략 500여세, 1,3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2-2. 수산리(水山里) ’물메 밭담길‘과의 조우.

 

자그마한 배낭가방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서, 네비게이션에 수산리사무소를 검색해서 출발하였다. 외도에서 대략 4.5km 떨어져 있었다. 이리도 가까운 마을인데, 지금껏 살면서 무슨 이유로 제대로 된 마을 구경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 필자는 솔직히 애월읍 수산리를 올레길을 걷거나, 단옥수수를 구입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도보나 승용차 등으로 지나쳐보았을 뿐, 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다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운전을 한지 대략 10여분 남짓해서 수산리에 도착했다. 대충 수산리 마을회관 근처 마을 어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마을 탐방을 준비하던 어디서부터 걸을까 고민하던 - 그 순간, 버스 정류장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 안내판에는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도와 함께 말이다. 다가가서 자세히 읽어보니, 수산리를 한 바퀴 빙~도는 자그마한 올레길이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걸어야 할지 다소 망막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정말 귀한 항해도를 얻은 느낌이었다.

 

밭담길 안내도
밭담길은 상기와 같은 안내 이미지를 따라 걸으면 된다.

 

잠시 밭담길에 대해 알아보자. 제주도에 총 21개의 올레길(실질적으로는 총 27)이 있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길 외에 총 7개의 밭담길이 있다고 한다. 이 총 7개의 밭담길을 살펴보면 < 구좌읍 월정리 진빌레밭담길‘, 구좌읍 평대리 감수굴밭담길‘, 성산읍 난산리 난미밭담길‘, 성산읍 신풍리 어멍아방밭담길‘, 애월읍 수산리 물메밭담길‘, 한림읍 귀덕1영등할망밭담길‘, 한림읍 동명리 수류촌밭담길‘ > 과 같다.

 

앞으로 마을 탐방 시에 매우 중요한 마을 관찰로가 될 것 같다. 

 

< 출처: 밭담길에서 만나는 제주(웹진), 제주특별자치도>
< 출처: 밭담길에서 만나는 제주(웹진), 제주특별자치도>

 

 

2-3. ’물메 밭담길‘을 걸으며 ’물메 호반 8경‘에 취하다.

 

애월읍 수산리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의 기억 상으로는 수산봉과 수산저수지 그리고 단옥수수 등뿐이었는데, 금번 탐방을 통해 물메 호반 8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물메 밭담길을 걸으면서 물메 호반 8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제1경-성두적성(城頭笛聲) 차향지예(此鄕之譽) : 성두(城頭)란 옛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마을에 성을 쌓았던 길목을 일컫는다. 그래서 성두의 피리소리 이 고장 명예 드높인다.”는 뜻이 되겠다. 수산리 입구의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래 사진과 같이 적성(笛聲)하는 종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에 성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바람에 '뎅그렁'거리는 종들의 모습

 

  • 제2경-제안행로(提岸行路) 수광은파(水光銀波) : 수산저수지와 어우러진 제방, 곧 둑길의 풍경으로 아래 사진과 같이 제방길 호수에는 은빛 물결 출렁이네.”라는 의미를 갖는다.

 

수산저수지와 제방
제방에서 바라본 수산저수지 모습

 

  • 제3경-산정봉대(山頂烽臺) 일망무제(一望無際) : 수산봉 정상의 경치와 안전을 뜻하는 문장으로 수산봉 정상 봉수대에 오르면 사방이 저멀리까지 확트여 경치가 뛰어날뿐만 아니라, 그만큼 사방이 잘 보여 경계를 통한 마을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수산봉 정상의 모습
수산봉 정상에 핀 매화꽃

 

  • 제4경-봉도고비(峰道古碑) 충절문촌(충節文村) : 수산봉 아래 수백년된 곰솔 나무 옆에는 성균관 대제학 김상현의 글과 제주목사 홍규의 글씨가 있는 옛 비석이 있기에, 이에 수산리가 문필들의 고장임을 암시하는 차원에서 수산봉에 도()가 기록된 옛날 비석이 있기에, 수산리가 충절(忠節)로 빛난다.’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 같다. (* 아쉽게도 금번 탐방에서 제4경에 관한 사진은 촬영하지 못했다.)

 

  • 제5경-노송수호(老松守湖) 산유지락(散遊至樂) : 수산봉과 저수지 그리고 곰솔나무 - 제주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수산곰솔 - 의 어우러진 풍경을 담고 있는 문장으로 수산봉 아래 노송이 저수지와 어우러져 있기에 그 경치를 돌아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라는 뜻이다.

 

 

  • 제6경-수운교당(水雲敎堂) 전래민풍(傳來民風) : 수산리에는 수산천(水山川)을 끼고 수은교(수산지부)‘가 위치해 있다. 수은교는 1923년 이상용(李象龍出龍子)에 의해 서울에서 창립된 동학계 신종교로서 < ((()의 무량대도(無量大道)를 현실세계에 널리 보급하여 사람을 지극히 섬기며, 영세의 행복을 누리고 덕()을 천하에 펼쳐 창생을 구제한다는 것을 교의(敎義)로 삼고 있다. > 라고 한다. 수산리에 언제 수운교가 세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6경은 수운교가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수산 마을 사람들이 수운교에서 정화수(井華水)를 떠다 정성껏 기도했던 전래민풍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사료된다.

 

 

  • 제7경-당동정자(當洞亭子) 녹음민회(綠陰民會) : 수산리는 예전에 본동(本洞), 당동(堂洞), 예원동(禮園洞), 하동(下洞)으로 구분되어진 마을이었다. 본동(큰동네)을 중심으로 설촌이 되었고, 수산봉 아래 당할망을 모시는 본향당이 있어 주로 제()를 지내곤 했던 마을이 바로 당동(堂洞)이었다. 이에 제7경은 당동(堂洞)네의 팽나무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제8경-원사종향(院寺鐘響) 만령진혼(萬靈鎭魂) : 수산봉 북쪽에 대원정사라는 절이 있고 서쪽 자락에는 충혼묘지(*출사 시에 가보지는 못함)가 있기에, 8경은 대원정사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마치 충혼묘지에 잠든 젊은 넋을 위로해주는 듯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금번 탐방 중에 대원정사는 촬영하지 못했다.)

 

이 제방 끝과 접하는 오름 하단에 대원정사가 위치하고 있음

 

 

3. 마치며

 

 

이렇게 물메 밭담길 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대략 2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물메 밭담길에 포함되어져 있지 않은 수산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물메 돌담길도 좋았고, 물메 호반 8경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좋았던 것은 마을을 걸으면서 접하게 되었던 시비(詩碑)였다. 수산리에는 정말 많은 수의 시를 담은 비석이 마을 구석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수산리는 2013년도부터 한국시인협회와 손을 잡고 시를 주제로 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시인 100명의 시 100편과 수산리 출신 시인 4명의 시 4편 그리고 기타 시 24편 등 총 128개의 시가 아로새겨진 시비(詩碑)를 제작하여 세운 것이다.

 

제주의 마을 탐방 첫 일정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짧지만 정말 많은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전에 수산리에 대한 일반적 지식과 충분한 이해 없이, 좀 즉흥적으로 탐방하였지만, 정말 산유지락(散遊至樂)‘할 수 있었던 좋은 힐링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