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자신 있게 !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오,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아니오~ 할 수 없습니다.’라는 선택은 당신 자유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당신 자신의 선택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논하는 것은, 자기결정영역에 대해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 자신의 선택 이유가 뚜렷하고, 그 이유에 대한 나 자신의 인식이 확실하다면, 선택에 의한 삶을 영위함에 있어 결과적으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불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 내가 그 순간 그와 같은 답변을, 선택을 했을까?”에 대한 성찰과 논의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 인간의 삶은 네 또는 아니오라는 선택의 연속적 과정이면서, 그 과정에서 시도와 실천, 성공과 실패 등을 통해 조각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출 생존전략다섯 번째 주제는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이다. 이 주제는 지금까지 연재 되었던,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성찰’,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라는 자존감 인식그리고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라는 변화 지향대비 실천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수 강산에의 대표곡인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보자.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중략)

어려워마, 두려워마, 아무것도 아니야.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거야.

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 당당히 네 꿈을 펼쳐 보여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2.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가. ‘가능(可能)’이 기본이요, 원칙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세상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아마도 대답 이전에 당신의 머리 속은 가능과 불가능,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성공과 실패 등의 단어가 쏟아지면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갈 것이다.

 

비틀어 생각해보자. ‘가능이 있기에 불가능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의 관계도 동일할 것이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가능이 기본이요, 원칙이기에 상대적으로 불가능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시대적, 시기적, 계절적, 능력적, 연령적, 제도적, 관계적, 심리적 등과 같은 장애 요인에 의해 가능이라는 원칙이요, 기본인 그 상태에 나 자신이 다다르지 못함에 대해 안타까움, 답답함 등을 담아 불가능 혹은 할 수 없음이라는 표현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달리 표현하면, ‘불가능가능이라는 기본에 다다르지 못함에 관한 욕망의 또 다른 분출이요, 표현이라는 것이다.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해보겠다.

 

당신은 라이트형제가 만약 비행기를 발명하지 못했다면, 21세기의 인류는 여전히 하늘을 날지 못하는 상태에 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필자의 답변은 아니오.”이다. 왜냐하면, ‘비행기의 발명이라는 것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능이라는 가장 기본에 관한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인간이 꿈꾸는, 바래는 것은 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고 원칙인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 비행기를 발명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언제부터 하늘을 날기 시작했는가.’가가 중요한 것이다. ‘날고 싶다는 꿈은, 바램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향했던 기본이요, 원칙이었기에 시대별 인류의 제 노력을 발판삼아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대별 특정 개개인의 하늘을 나는 꿈이 성취되지 못했다고 해서 불가능 혹은 실패라는 표현을 당연히 갖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정리해보자.

 

당신과 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행하면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존재가치는 가능그 자체가 된다. 단지 그 가능이라는 기본이자 원칙 대비 우리 개개인이 혹은 인류가 시대적, 시기적, 계절적, 능력적, 연령적, 제도적, 관계적, 심리적 등과 같은 장애 요인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인지 및 수용 혹은 대처하는가의 정도 차이, 즉 만족, 불만족 또는 성공 혹은 실패 등이 관념적으로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복지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신은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단지, 그 무엇인가를 선택할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결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곧 당신은 그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 이제 당신은 스스로에게 사회복지현장에서 내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소속된 조직에서 당신에게 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당신은 ,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행하고자하면, 온전히 행함이 되는 것이 기본이요, 지극히 자연적 원칙임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 당신 자신을 믿어라.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느 정도 믿는가.

 

이 질문과 관련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다.

 

본 개념은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알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라는 학자가 제시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주어진 수행의 유형들을 조직하고, 실행하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으로 정의된다.

 

흥미로운 점은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 반면에,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자기 효능감 [self-efficac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효능감은 나 자신에게 어떠한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 자기효능감은 그 어떠한 일 혹은 직무 등 대비해서 현재 그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현재 그런 능력이 있고 없음을 떠나서 그 일 혹은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 정도에 관한 개념인 것이다. 이에 구체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 일 혹은 직무 등에 대해 나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자기효능감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 나 자신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자기효능감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써, 개인이 행동을 선택하고, 난관에 직면하더라도 그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충분한 능력, 즉 많은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더라도 이것이 행동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데, 이때 자기효능감이 이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반복해서 행동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탁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원하는 미래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기를 끝까지 해낸다면, 당신의 꿈은 실현된다.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아래와 같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 시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제주사회복지신문 (jejubokjinews.com)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 제주사회복지신문

1. 들어가며“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자신 있게 “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www.jejubokjinews.com

 

 

3. 이것만은 조심하자.

 

가. 고객만 생각하라.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제일 먼저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은 비행기 발명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류의 꿈에 집착한 결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당신에게 그 어떤 직무가, 직위가 주어졌을 때, 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그 직무와 관련되어 있는 고객의 꿈을, 욕구를 먼저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고객에게 이로우면, 그 고객이 사는 지역사회에도 이로운 것이고, 그 지역사회에 소재하는 당신의 조직에게도 이로운 것이며, 이는 곧 당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는 당신의 1차 고객은 지역주민이겠지만, 0순위 고객은 바로 당신 자신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 자신만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계 최대 유기농 농산품 체인점인 홀푸드마켓은 빈곤하고 낙후된 도시로 알려진 디트로이트에 2013년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다. 고객기반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볼 때 성과 측면에 이득이 되는 결정임은 분명했다. 놀라운 것은 공동 CEO인 월터 롭이 제안한 아이디어인데, 디트로이트 매장을 통해 빈곤계층에게도 건강한 식재료에 쉽게 접근하고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미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유기농 음식은 고소득층 백인들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인식을 깨고, 더 나아가 지역주민들을 위해 건강식과 조리법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출처: 중앙일보, [이승윤의 경영리더십 강의] 긍정 리더십 모델의 4가지 핵심요소, 2016.04.30.)

 

나. 혼자서 해내지는 못한다.

 

질문 하나 해보겠다. ‘()’이라는 사회복지현장가에게 후원사업이 직무로 분장되었을 때, ()은 그 조직의 후원사업 관련 기획, 마케팅, 후원인 모집 및 관리, 후원금품 관리, 피후원인 선정 및 관리 등의 업무를 다 담당해야 할까.

 

과거에는, 20세기말까지는 이런 형태의 업무분장과 직무수행이 기본 골격이었다(물론 이런 틀을 깨고 나간 사회복지시설도 많았지만...). 이와 같은 형태의 사업경영구조는 연말에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그 직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제 역량 또는 의지 정도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 마디로 자영업 수준의 후원사업형태가 되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는 상기와 같은 후원사업 골격은 고객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한다. 고객과 지역자원 등이 주체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사업경영구조가 마련되어져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후원사업 담당자가 ‘00후원사업이라는 자회사를 하나 설립, 운영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고객의 다양화, 고객의 욕구의 다양화, 급변하는 사회의 문화 등을 고려할 때, 20세기에 후원사업담당자를 필요로 했다면, 21세기에는 후원사업 전문 경영인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경영자 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어 가는지 실험을 한 연구가 있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록 한 결과,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들이 자신과 가장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투자자문가는 투자자문가끼리, 마케팅 임원은 마케팅 임원끼리~). 물론 자신과 경험과 교육, 직업,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이 함께 일하기도 편하고 더 쉽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정보나 기회를 알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중요한 시대에는 큰 단점이 아닐 수 없다. 보다 더 다양한 집단과 사회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다면, 메리 게이츠의 비영리단체 이사회처럼 공동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포츠 동호회나 사회봉사단체, 부서 간 단합대회, 자선 단체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되면,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땀 흘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감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는 지속적이며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한다.(출처: 중앙일보, [이승윤의 경영리더십 강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네트워킹 역량, 2016.07.24.)

 

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라.

 

나와 고객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 및 지역자원 사이에 관련 정보가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복지서비스의 기본원칙은 고객의 바람을 고객 자신이 이루도록 조력하는 것이 원칙이지, 당신과 같은 사회복지현장 전문가 혹은 지역자원이 그 이룸을 대행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고객의 자기결정권, 즉 선택과 실천의 제 조건을 최대한 강화시켜주는 것이 21세기 사회복지현장 전문가의 가장 핵심적 제 기능과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을, 조건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공유가 필수이다.

 

생각해보라. ‘이 없으면, ‘꿈 혹은 욕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곧 실천의 부재로 귀결된다. , 인간은 정보를 취해야 주인의식을 갖는, 자기효능감을 강화시키는, 자기결정권을 100% 발휘하는 존재인 것이다.

 

미국의 최대 국내선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20042월 당시 급등한 유가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때 CEO는 임직원 전체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각자가 하루에 5달러씩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준다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연간 5천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기업의 수익성 유지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CEO의 메시지를 받은 임직원들이 곧바로 절약 아이디어들을 답신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불과 6주 만에 2백만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모였다. 조직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직원들을 아웃사이더로 취급하고 경영진 내부적으로만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면, 직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조직의 위기 타개를 위해 직원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요청할 때, 직원들은 조직에 대해 더 큰 애착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 조직을 살려 내는 데 기여한다는 주인의식까지 고취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출처: 중앙일보, [이승윤의 경영리더십 강의] 직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위기 경영 기법, 2016.10.16.)

 

라.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하지 마라.

 

당신 자신과 고객을 위한 혹은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그 일의 유형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라. 나 자신의 행위 혹은 직무 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은, 초라하게 여기는 것은 전문가가 가져야 할 인식이요, 자세가 아니다.

 

만약, 사회복지현장의 전문가인 나 자신이 나의 일에 대해, 내가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 낮게 평가한다면, 그 상태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자기효능감 및 자존감 등은 어떻게 향상시켜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할 때, 우리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음을, 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어떻게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지, 가장 크게 생각하는 다이어트 장애요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주변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다이어트가 주변요인에 의해 방해 받을 때마다 불편해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다가 결국 다이어트 실패의 책임을 타인의, 환경요인의 탓 등으로 돌려버린다.

 

,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일까. 인간은 이성으로 그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창피를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빈약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다. 전자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저조한 성과의 원인을 스스로의 무능력함 탓으로 돌린다. 실직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면 무능력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기 위해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대신 가족이나 친구 등 몇몇 친한 사람들과 익숙한 공간 속으로 숨어버린다. 결국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 및 사회적 네트워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이나 유용한 정보를 활용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반면 후자는 어려움이 닥쳐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난관을 타개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주변 동료들이나 친구들, 선후배들로부터 정보와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이끌어낸다. 결국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난관을 이겨내고 정상 궤도로 복귀한다.(출처: 중앙일보, [이승윤의 경영리더십 강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네트워킹 역량, 2016.07.24.)

 

재차 강조한다. ‘가능(可能)’이 기본이요, 원칙이다.

 

이와 같은 가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부끄러움을, 창피를, 달리 표현하면 나 자신을 감춤에서 탈출해야 한다. 창피할수록 더욱 더 당신 자신이 맡고 있는 일 혹은 직무를, 그 일과 직무 등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바램 등을 공유하고 실천하자. 만약 당신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고객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지역사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라는 크나큰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마. 절대 ‘포기’하지 말라.

 

창의성과 혁신의지는 리더와 구성원들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때 강화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새로운 만큼 실패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희한하고 어설픈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비난받고 질책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IDEO의 브레인스토밍 미팅을 관찰하면, 팀원들이 주저 없이 서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팅의 활기 그 자체를 즐기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통해 지적 자극을 받는 것이다.(출처: 중앙일보, [이승윤의 경영리더십 강의] 긍정 리더십 모델의 4가지 핵심요소, 2016.04.30.)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통한 학습이 혁신의 원동력임을 강조하는 리더십 또한 기업과 조직, 국가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의 핵심 역할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계획 대비 행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계획을 능동적으로 수정하면 된다. 그렇기에 장애에 직면했을 때, 포기를 떠올릴 것이 아니라, 수정 전략을 꾀함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 삶의 리더가, 당신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무의 리더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단언한다. 당신 삶의 리더는 당신이요, 당신의 직무 대비 리더도 바로 당신이다. 그렇기에 사회복지현장의 전문가인 당신은 그 어떤 직무를 맡음에 두려워하지 말고, 그 직무 수행 과정에서 선택을 함에 주저하지 말며, 그 직무와 관련된 권한을 행사함에 눈치 보지 말고, 그 직무 수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짐에 당당해져야 한다. ‘리더(leader)’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라.

 

조직에서 직접 실무를 맡은 사람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실무를 맡은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상급자를 대하는 '아랫사람'의 센스, 그리고 '지금껏 그 조직에서 해왔던' 문제 처리 방식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보통 이 두 가지를 빨리 익히지 못할 때 '일을 못한다'는 딱지가 붙는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우 '지금껏 해온' 문제처리방식을 익히는 것과 '문제해결능력' 자체는 별개일 수 있다. 조직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훌륭한 조직이라면 실무를 맡은 사람의 일 처리 방식이 조직과 다를 때 이유를 파악하고, 실무자의 의견을 경청해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낸다. 무조건 조직의 방식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배척하는 대신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닌 당신의 방식을 아랫사람의 센스가 없다며 배척하는 조직의 잘못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무조건 움츠러들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출처: HUFF BOOKS, 일을 못하는 게 결코 당신 탓만은 아닌 이유 3가지, 2017.02.05.)

 

지난해 528일 일어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을 생각해보자. 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스크린 도어 고장을 21조로 수리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김 군 혼자 수리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보자. 만약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서 수리를 해낸 사람을 유능하다고 생각했을까, 21조의 '원칙'을 지키겠다며 수리 요구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유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슬프게도 우린 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우리 조직 곳곳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우린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센스' 없고 '융통성'이 부족한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원칙'을 지켰을 때의 피해도, '융통성' 때문에 터진 사고도 모두 '실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결국 유능과 무능은 조직이 찍는 방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의 말대로라면 정말 유능한 인재는 조금이라도 그런 문화를 바꾸는 이들이다.(출처: HUFF BOOKS, 일을 못하는 게 결코 당신 탓만은 아닌 이유 3가지, 2017.02.05.)

 

 

4. 나가며

 

우리 인간은 삶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 삶은 우리 인간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의미가 있으며, 지금 궁극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을 갖고 그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선택한 반응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 삶이란 바꿀 수 없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한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출처: 무엇이 내 인생을 만드는가, 2012)

 

이 글을 읽고 있는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이 자원봉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든, 후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든, 상담업무를 담당하거나, 사례관리 업무 혹은 재가복지서비스 업무, 또는 교육훈련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직무를 왜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행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설정과 그 설정에 대한 신념, 즉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자동차를 비유로 해서 살펴보자.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은 직무 유형에 따라, 경력에 따라, 조직의 특성에 따라, 봉고차를 운전할 수도 있고, 버스를 운전할 수도 있으며, 트럭을 운전할 수도 있다. 물론 소형 자동차외에 멋진 리무진 차량 혹은 외제 고급차 등을 운전할 수도 있다. 다양한 차가 존재함은 다양한 복지사업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그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차량이 필요하다. ,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외형은 당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 자동차 외형은 사업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핵심은 왜 그 자동차가 그 도로 위를 운행해야 하는가라는 가치 혹은 의미이며, 그 가치 혹은 의미 달성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믿음, 즉 적절한 엔진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한마디로, 운전자의 전문직업적 정체성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에게 아래 내용을 진심으로 권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당신은 지금 담당하고 있는 사업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지역사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가. 그 어떤 변화가 도래해야 이 세상의 특정 사회문제가 예방 및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 도모를 위해 당신은 그 어떤 일이라도 행할 긍정적 의지가 있는가.

 

인류가 과거에는 하늘을 나는 것을 꿈꿨다면, 21세기의 인류는 우주개척을 꿈꾸고 있다. 이 꿈 또한 어느 정도 실현 궤도에 올라서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사회복지현장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현장가 또한 사회복지 발전 혹은 사회보장 구현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그 어떤 가능(可能)’에 함께 올인 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그 가능(可能)’을 나와 당신이 직접 구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희생이 없이 개인적 행복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인류공영 등은 추수할 수 없다. 시대별로 오롯이 미래의 그 가능(可能)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전문가의 헌신적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모습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요, 전문가집단의 연대이고, 문명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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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창출하는 변화의 주체로 당신을 변화시켜라(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6)

http://www.jejubok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06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아래와 같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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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1)

바램 하나 - 직장생활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램 둘 - 이 지긋 지긋한 직무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 바램 셋 - 동료직원 또는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바램 넷 - 계속해서 급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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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2)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1. 들어가기 2021년 12월말까지 제주사회복지신문에 연재(월 1회)되는 이 글(타이틀 :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은 ‘생존전략’이라는 용어의 그 성격상,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떻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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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3) -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 시론 < 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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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 천방지축 생존전략 4 -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http://www.jejubok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4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 제주사회복지신문 1. 들어가며필자는 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 존재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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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 제주사회복지신문

1. 들어가며필자는 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 존재론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꿈이 무엇인가’를 찾는 질문이며, (2)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나는 이 꿈을 구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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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1. 들어가며

 

필자는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②>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 존재론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꿈이 무엇인가’를 찾는 질문이며, (2)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나는 이 꿈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자기결정’에 관한 질문이고, (3) 더불어 ‘나의 꿈을 구현하기 위한 자기결정(계획)을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에 대한 자성적 질문’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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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2)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1. 들어가기 2021년 12월말까지 제주사회복지신문에 연재(월 1회)되는 이 글(타이틀 :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은 ‘생존전략’이라는 용어의 그 성격상,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떻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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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③>에서는 ‘사회복지현장가인 여러분에게 존재가치 추구를 통해 행복을 영위하는 존재로 변화, 성장하길 바란다면, (1) ’행복‘은 ’변화‘속에서 생성되고, (2) ’변화‘는 ‘꿈, 자기결정, 실천이라는 3가지 구조 하에서 구현’됨을, (3)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의 3가지 구조’는 ‘사회복지현장 혹은 사회복지시설 대비 나의 존재가치 발견을 전제로 함‘에 대한 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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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3) -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 시론 < 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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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궁금하다. 이번 글까지 이제야 겨우 4편의 글을 공유한 것에 불과하지만, 과연 필자와 여러분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지 말이다.

 

낯설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길을 동행함에 낯설어 하거나,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여정은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에게 ① 당신의 사명(mission)은 무엇인지, ② 그 사명을 바탕으로 사회복지현장에서 창조하고자 하는 당신만의 독창적인 가치(value)는 무엇인지, ③ 이런 사명과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을 당신은 누구와 함께할 것(net-work)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고, ④ 그와 같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어떤 조화(eco-system)와 공유가치 등을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당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용기 및 방법 등을 안겨다 줄 수 있는 ’꿈을 깨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우리 함께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4번째 주제인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영역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자.

 

 

2. 눈치보지 말고, 오롯이 당신 자신의 꿈을 그려보라.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복지의 전문성을 높이며, 사회복지사업의 공정ㆍ투명ㆍ적정을 도모하고, 지역사회복지의 체계를 구축하고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을 높여 사회복지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사회복지사업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한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동법 제1조의2(기본이념)는 ’사회복지사업의 공공성 확보의 필요성을,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인권 보장의 중요성을, 사회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보장기본법은 제2조(기본 이념)에서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ㆍ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1조(목적)에서 ‘이에 대한 제 권리는 국민에게, 책임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윤리강령 전문은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사회복지사는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어떠한 여건 에서도 개인이 부당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이러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사회복지관련 법률과 전문직업 윤리강령은 그 존재이유와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기본이념 혹은 실천전략 등을 제법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법률과 윤리강령 등에 의거해 사회복지현장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나와 당신은 이런 법규정과 윤리강령에 걸맞게 구체적 전문직업적 목표와 실천 전략을 수립하여 사회복지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을까. 혹시, 기계적으로 상기와 같은 법규 및 윤리강령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는 상태에 안주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기계적 혹은 가식적 목적 혹은 목표에 의거해서 추진되는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인권존중, 자결권 보장, 사회통합 및 참여, 자립 및 자활, 연대 등과 같은 성과를 진정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 무엇보다도 신념이 깃들인, 지향점이 확실한 꿈이 담겨져 있는 목적 혹은 목표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에게 당신의 존재가치(달리 표현하면, 권리)와 책무를 어떤 형태로라도 조작적으로 정의하기를 권유한다. 그 표현이 어설퍼보일지라도 ‘나의 존재가치는 000이고, 그 존재가치 대비 나의 책무는 000이다.’와 같이 일단 문장 형태로 한 번 기술해보자. 어떤 형태로라도 그 내용이 기술되면, 차근 차근 잘 다듬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래에 짧게 한 줄로 한 번 표현해보자.

 

 

참고로,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의 존립가치는 인류공영(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보장이며, 사회복지사의 책무는 인류공영을 저해하는 사회적 불평등 예방 및 해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는 고대사상이 바로 묵가의 겸애(兼愛) 사상이다. 이와 같은 개인적 관점의 정의를 정리하는데, 필자 또한 최소한 10여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만큼 앞으로도 더 공을 들여 가다듬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3. 구체적인 꿈이 있으면, 아이디어는 저절로 샘 솟는다.

 

사람들이 필자에게 가끔 묻곤 한다, “어떻게 해야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으면, 그리고자 하는 꿈이 있으면, 지키고자 하는 꿈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게 샘 솟는다.”라고 대답한다.

 

꿈을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 즉 실천 비전과 전략은 백화점에 전시되어져 있는 상품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개념화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꿈 그 자체가 추상적 개념이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당신이 추상적이지만, 자그마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한 고민을, 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에 걸맞는 실천 비전과 전략은 당신의 뇌리에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과의 대화 속에 깜짝 나타날 수도 있고, 산책이나 명상 속에서 만날 수도 있으며, 독서를 하다가 발견할 수도 있고, 사업을 추진하다가 마주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꿈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는 차이는 첫 출발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차이는 엄청난 갭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2018년 3월15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자선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화사업‘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이탈리아 최고 셰프인 마시모 보투라가 프랑스 파리에 노숙인 식당을 열었다는 기사다. 유명인사가 사회공헌활동을 한다는 기사는 특별 이슈는 될 수는 있지만, 창의적이지 않은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마시모 보투라의 무료 급식소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정말 창의적이다.

 

첫째, 이 무료 급식 식당의 운영 철학은 ’환경과 존엄‘으로 요약된다. 일반 음식점에서 쓰고 남은 재료를 활용해(후원 받음) 음식물쓰레기를 최소화(매년 13억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는 동안 8억6000만명은 굶고 있음)하고, 노숙인이 인간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식을 제공(지역에서 활동 중인 셰프들이 참여하여 노숙인들이 일반 식당을 이용하듯이 조리된 식사 제공 원칙)한다.

 

둘째, 보투라는 ”셰프는 자신의 식당에서만 요리할 수 없다. 셰프들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도 책임이 있다.“는 신념 하에 무료급식식당을 자선사업이 아니라 ’인간존엄의 문화 프로젝트 사업‘이라고 정의한다.

 

셋째, 이 무료급식식당은 무료급식시간을 제외하고는 지역주민에게 일반식당과 같이 운영된다. 그리고 그 수익금은 본 식당 운영으로 충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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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사회복지는 인간 존엄의 문화사업이다.

사회복지사의 꿈 2는 사회복지사는 아니지만 사회복지사업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한 사람의 꿈에 대해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국장 연수를 마치고 제주로 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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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창의적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 사회복지현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회문제 예방 및 해결, 주민참여, 당사자 참여, 자결권 보장, 인권 존중, 삶의 질 향상, 사회통합 등과 같은 개념이 잘 어우러져 있다. 환상적인 비빔밥과 같은 느낌이든다. 이와 같은 사회복지사업을 우리나라에서, 우리 제주도에서 추진하는 것은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신념의 문제, 달리 표현하면 신념의 존재 유무 및 그 신념의 공유 그리고 확산을 위한 제 노력의 정도 차이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조그만 차이가 실천이냐, 상상이냐를 갈라놓는 것이다.

 

 

 

4. 많은 사람과 당신의 꿈을 네트워크(net-work)하라.

 

’네트워크net-work 또는 연계, 협력‘이라는 단어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어지는 단어중 하나일 것이다.

 

그 의미를 사전적으로 살펴보면, ① (언론)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방송에서, 각 방송국을 연결하여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체제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② (컴퓨터) 랜(LAN)이나 모뎀 따위의 통신 설비를 갖춘 컴퓨터를 이용하여 서로 연결시켜 주는 조직이나 체계(예: 통신망)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③ 그밖에 자료, 기술, 지식이나 연락 등을 공유하고 있는 조직이나 사람들의 공식, 비공식 결연상태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혹은 ④ 어떠한 일이나 문제점을 처리하는 데 각 기관 따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체계(예: 관계망 등)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공통사항이 하나 눈에 띌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의 존재가치에 대한 측면이다. 즉, 네트워크에는 ’방송, 통신, 자료 공유, 공동 노력 등‘과 같은 공통의 꿈, 즉 목적 및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하면서 사회복지현장가인 여러분도 느꼈을 것이다. 팀워크가, 네트워크가, 연계 및 협력이라는 것이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회복지현장가들은 그 어려움의 원인을 스킬의 부족으로 예를 들어, 나 자신의 역량 미흡 등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물론 개개인의 제 노력이, 능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맞지만, 좀 더 그 안을 들여다보면, 네트워크 기관 상호간, 연계협력 관계 사이에 서로 다른 꿈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꿈의 상이(相異)함이 궁극적으로 네트워크의 원활한 전개를 가로막는 주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한 네트워크 안에 방송, 통신, 자료 공유, 사회문제 해결 등과 같은 상이한 꿈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와 같은 상태에서 과연 네트워크로서의, 연계협력으로서의 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외형적으로는, 겉모습만으로는 네트워크라고 칭할 수 있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연계협력이 존재하지 않는 개별활동이 주를 이룰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꽃에서 향기가 나면, 나비와 벌 등과 같은 곤충이 몰려드는 것처럼, 네트워크는 꿈, 신념 등과 같은 향기를 적극적으로 공유 및 확산.보급하고자 하는 인적, 물적 연결망임을 명심하자. 그리고 이와 같은 네트워크를 견실하게 조직, 운영하고자 한다면, 아래 표에서 제시되고 있는 ‘장치, 정보, 교환, 연결, 매체’라는 5가지 구성 요소를 실효성 있게 반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인식하자.

 

 

5. 나가며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2013)’라는 책을 보면 ‘천하주의의 도량은 넓어서 하나의 종족이나 민족, 국가를 최고의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그것의 관심은 늘 온 세상의 인류였다. 이것이 바로 문명 제국의 커다란 기상이자 구도다. 즉, 인류 전체의 문명적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기 한 몸의 이익에 국한된 문화적 자각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눈을 둔 문명적 자각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필자는 이 문장을 너무자 좋아한다. 그래서 가슴 깊이 새겨두고 지낸다. 필자가 이 글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사상가적 관점에서의 사회복지사의 제 자세와 역할’을 시원스럽게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든, 문명이든 모두 궁극적으로 정체성(identity) 문제로 향하는데, ① 문화적 정체성은 특수하고, 통상 ‘우리 것’을 자기변호의 이유로 삼는 반면, ② 문명적 정체성은 인류 전체에 적합한 보편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며... 또 문명은 ‘(인류 행복 측면에서) 무엇이 좋은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문화는 ‘무엇이 우리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서로 다르다. (참조: 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여기서 문화적 관점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명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문화만을 고집했을 때, 그 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은 매우 부정적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아래와 같은 역사적 결과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독일도 세계 제일이 되고자 했고 강국의 꿈을 꿨지만 결국에는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고 말았으며, 일본도 경제가 비상했던 1970년대에 역시 ‘일본 제일’을 꿈꿨지만, 1990년대 초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적 쇠퇴에 들어섰고, 오늘날까지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의 독일과 일본에는 ‘군사력, 경제력, 금융력’만 있었고, 보편적 문명이 결여된 상태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할 만한 문명적 가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례는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양은 17세기부터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는데, 가장 앞섰던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모두 해상무역과 패권이라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명정신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결국 오래가지 못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19세기, 20세기에 한 세기씩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군사력과 물질적 실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들이 근대 문명에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참조: 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이에 필자는 21세기 우리나라 사회복지계는 앞으로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 구현’ 보다는 ‘복지 문명 구현’이라는 지향점을 더 중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회복지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전문가들이 개개인이 그리는 문명적 꿈을 꾸고, 그 꿈을 상호 공유하며, 그 꿈 구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문화 조성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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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사회복지인 천방지축 생존전략 5)

1. 들어가며 “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자신 있게 “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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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정산종사 )에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생을 영위함에 있어 면할 수 없는 직무요, 피할 수 없는 생명수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간의 영원불명 업()‘4가지 생활 강령이 있다고 한다, (), (), (), ()’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21세기 공업화시대에 (), (), (), ()’을 생활 강령으로 받아들일 의사가 조금이라도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 부적절한 논리이다.”라고 웃어넘길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이 4가지 단어의 의미를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서 생각해보면, 단순명료하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大學(대학)에는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의미를 가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라는 것은 결과론적인 것이고, 그 이전에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럼 심신의 수양은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공자는 인(), 묵자는 겸애(兼愛)를 그리스도교는 사랑을 내세우고 있다면, 원불교는 (), (), (), ()’의 이치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첫째, ()이다. / 인간(人間) 인간다움, 인권(人權) 

 

()는 선비이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기에, 정신으로 운전하는 것은 모두 선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 가운데서 어떠한 것이 제일 시들지 아니하고 영원할까. 바로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의 존재성과 그 가치 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사상과 도덕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가 제일 불멸의 선비요, 물맛 같은 선비이다. 이렇게 본다면, ()는 바로 철학 즉, ‘정신의 창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복지시설 운영 관점에서 보면 조직운영 미션과 운영 철학 또는 이 미션과 운영 철학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조직문화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겠다. 사회복지 현장가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복지사상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think] 사회복지현장가로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의 그릇으로 얼마만큼 성장하였는가. 그 성장의 과정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무엇을 가르치고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사회복지는 과연 21세기 문명의 나아갈 길의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가. 길라잡이로서의 제 기능과 역할 수행 차원에서 국민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이다.  / 관계(關係), 사회(社會)

 

()농사철이 되어 밭에 나가 농사를 짓다.’라는 뜻과 같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연을 재배한다.’는 의미를 갖지만, 이외에 인간을 탄생시키고 키운다.’는 의미도 갖고 있으며, 이밖에 인간과의 사이에 관계를 창조, 유지 및 성장시킨다.’는 의미와 인간과 사회 및 국가 등의 관계에서 관리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와 같은 여러 의미 중에서 사람 농사(인재 양성)’가 제일 근본이 된다. 그 이유는 가정에 있어서도 흥망이 그 자녀손(子女孫)의 정신에 달렸으며, 한 사회와 한 국가 그리고 세계에 있어서도 후진(後進) 인재 양성에 따라 그 흥망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영원히 행복 되고 빛나려면, 인농(人農)을 대본(大本)으로 알고 그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하였고, ‘농부(農夫)는 굶어 죽더라도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農夫餓死枕厥種子(농부아사침궐종자))라고 하였던 것이다

 

 

()와의 관계에서 보면, ()은 사()를 기준으로 한 인농(人農)이기에, ()()’을 일굼을, ()은 그 밭을 바탕으로 작물과 사람(인재)을 재배 및 양성함을 의미한다

 

사회복지 관점에서 보면, 사회문제 해소 및 예방 그리고 복지증진 등을 도모하기 위해 사업을 기획하거나, 사회복지시설을 설립·운영하거나, 사회복지관련 정책 및 제도 그리고 사회복지 사상 또는 이론체계 등을 연구·개발 및 적용하는 것 그 자체가 사()에 해당된다면, ()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복지현장가를 양성하는 것 또는 고객의 역량강화를 도모하는 것 등이 농()에 해당한다

 

[think]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당신은 어떤 동료, 고객 등과의 인간관계와 조직내 혹은 사회복지분야 인재양성 등을 위해 어느 정도의,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가. 이에 덧붙여 고객과 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고객의 역량강화를 위해 어떻게 농()하고 있는가. 사회복지가 재배하고자 하는 작물은 무엇일까. 작물재배를 위해 사회복지가 개간한 토지는 어느정도일까. 사회복지는 21세기 인간을 어떤 인간으로 양성하고자 하고 있는가.

 

 

셋째, ()이다. / 문화(文化), 문명(文明)

 

이 공()만물을 제조하여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

 

먼저 만물제조해서 만듦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선 제조해서 만듦이라는 것은 유·무형의 어떤 형태(, 만물)를 일정한 틀 또는 방식(: 설계도면, 제조술 등)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고, ‘만물은 이와 같은 일정한 틀 또는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유무형의 특정 형태(: 비행기, 건물, 매뉴얼, 법률 등)를 통칭할 것이다. , ()은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삶 속에서 필요한 유무형의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통칭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공()우리 인간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는 곧 공()에는 우리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는 공()과 인간의 삶 영위에 있어서 심() 제조의 공()이 있다는 것이다. 2가지 공() 중에서 제일 불멸의 업()은 바로 심() 제조의 공()이라고 한다. 쉽게 이해를 도모하면, 비행기는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그리고 다수의 인간의 공간 이동을 도모하기 위해 항공기라는 형태의 공()되었다면, 전투기는 인간 살상용으로 목적으로 한 무기 형태로 공()되었다는 것이다

 

 

 

 

유물론자(唯物論者)들은 세상이 평정되고 행복을 누리려면 먼저 물질이 주가 되어 풍부한 물질만 있다면 전쟁과 악이 스스로 없어진다.”고 말을 하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돈 많은 사람들은 송사(訟事)가 많고 불의가 많으며, 가정에 있어서도 재물이 풍부하면 그 가정은 큰 인물이 될 자녀를 두기 어렵고 화목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은 인간사에 있어서 물질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물질을 만드는 공장보다 먼저 마음의 공장을 잘 다스려야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업 중에는 마음 공장이 영원한 공업이며, 제일의 공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와 농()과의 관계에서 공()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은 인간이 철학을 하거나 인농(人農)을 함에 있어서 그 근간이 되는 나의 마음 즉, ()을 잘 다스림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비뚤어지면, ()와 농() 또한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복지 관점에서 공()을 살펴보면, 복지시설을 설립하거나 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조직운영규정 또는 사업매뉴얼 등을 연구개발하거나 인적 또는 물적 자원을 조직화거나 민관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현장입장에서 ()을 제조하는 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회복지현장가로서 전문직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과 결과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think]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당신은 어떤 사()를 바탕으로, 어떤 농()을 추수하고자, 어떤 형태의 공()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복지사회, 복지국가를 외치고 있는 지금, 사회복지는 그 사회에, 그 국가에 어떤 () 노력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가. 그 () 노력과 성과가 사회복지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위한 것인가.


 

넷째 상()이다. / 이동(移動), 전파(傳播)

 

()은 이곳의 물건을 저곳으로 옮겨주며,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옮겨 누구나 다 그 물건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은 사(), () 그리고 공()의 결과물을 인간과 사회에 시공간을 바탕으로 전파시키는 기능과 역할을 뜻한다

 

이때, 전파의 대상은 스마트폰과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사상, 정보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해당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생활에 상업이 없었다면 수많은 인류가 편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그 물건의 진가를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업의 공()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원불교 정산종사는 영원불멸한 상업은 법() 장사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법()은 불법(佛法) 등과 같은 종교 교리 또는 공자 사상 등을 뜻한다

 

()을 기준으로 사(), (), () 관계를 살펴보면, 인간의 역사 상 문화 또는 문명의 전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관점에서의 상()은 무엇일까. 인적 혹은 물적 자원의 발굴과 이를 통한 고객과의 연결 행위 등이 상()에 해당할 것이며, 사회복지 관련 정보 등을 취합·정리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행위 등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직문화 등을 전승하는 것도 상()이라고 할 수 있다

 

[think]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당신은 고객과의 관계에서, 동료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사회복지시설과의 관계에서, 민관 사회보장 환경체계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무엇을 위해, 어떤 전파활동을 행하고 있는가. 사회복지는 21세기 복지문명을 이뤄낼 수 있을까. []

 

사상(思想)은 무엇일까.

 

인간 개개인이 삶 속에서 사고 작용의 결과로 깨달은 세계관(: 사회나 인생 등에 대한 지적(知的) 측면뿐만 아니라 실천적 ·정서적 측면까지를 포함한)의 총칭이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달리 표현하면 특정 시공간에서 인간 개개인의 개별성에 바탕으로 둔 주관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윤리(倫理)는 무엇일까.

 

특정 집단(: 부족, 사회 또는 국가 등) 하에서 인간 개개인의 사상이 어우러져 문화적 차원으로 약속·승인된 행위에 관한 제반 양식이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달리 표현하면 온전히 시공간을 초월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협의의(, 특정 시공간 구역에서) 보편성과 객관성이 확보되어진(또는 확보되어졌던) 행위 방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철학(哲學)은 무엇일까.

 

사상을 바탕으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인간과 세계 등에 대한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달리 표현하면 범인류애적 관점에서 사상과 윤리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 연구학문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사상(思想)과 윤리(倫理) 그리고 철학(哲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사상(思想)은 사유(思惟)의 영역이고, 윤리(倫理)는 사상(思想)의 실천(實踐) 영역이며, 철학(哲學)은 사상(思想)과 윤리(倫理)의 타당성 연구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문명(文明)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화로 안의 담겨져 있는 사상(思想)이라는 숯덩이들에 철학(哲學)이라는 불꽃이 가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숯이 달구어져야 즉, 사상철학이 보편적,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야 -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하여 방안이 따뜻해지듯이 - 시공간을 뛰어넘는 범 인류애적인 문명(文明)이 형성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문명(文明)은 ‘사상(思想)과 윤리(倫理) 그리고 철학(哲學)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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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빠지기도 하고, 흥분된 상태로 들어서기도 하며,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부러움, 질투심 혹은 반성, 변화의 계기 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간 상호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은 인간들 사이에서만 발생할까. 인간이 창조하는 문화와 문화 사이 혹은 문명과 문명 사이에도 유사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사회복지사가 문명의 특성 등을 잘 이해한다면... '사회복지현장에서 개별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사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이 지역주민(서비스 이용 고객이 주가 되겠지만)과 지역사회(주민참여를 기반으로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복지사업이 전개되는 특정 지역)와의 관계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어떤 상호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인지를 나름대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리 사회복지사는 혹은 사회복지계는 '21세기는 복지의 시대이다.'라고 강조를 하고 있지만, 실제 이 문장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 싶다. 복지 관련 예산이 증가하고, 복지 관련 제도와 정책이 다양화되고, 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현장가에 대한 처우가 좋아진다고 해서 '복지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이 영원히 지속화 될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사회복지'라는 영역이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하지는 않을까. 만약, 이런 위험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계는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필자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평안(平安)할 때에도 위험(危險)과 곤란(困難)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 말고 미리 대비(對備)해야 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분명히 변화, 성장하고 있고, 이 변화와 성장의 흐름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직업이 제도적으로 체계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회복지가 주가 되어서, 사회복지사가 주가 되어서 진보를 이뤄내는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계는 '복지시대'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필자는 그 방법을 복지와 문명의 결합에서... 아니 결합을 넘어서서 '제도적 수준의 복지를 문명적 차원의 개념으로 이끌어 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2. 사회복지와 문명


우리는 문명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된 결과물(물질문명, 정신문명)의 총체 즉, 인간의 지혜로 인해 사회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라고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적 정의를 바탕으로 보면, 문명은 ‘(1) 인간 (2)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의 총체(물질적 차원이든 정신적 차원이든) (3) 인류의 진보된 상태로 나뉘어볼 수 있겠다.


그럼 이런 분류를 사회복지에 적용시켜보면 어떻게 될까.



상기 표를 바탕으로 21세기 사회복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면사회복지는 물질과학문명이 주도하는 문명시대의 인류가 삶의 질 향상 상태(진보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행하는 사회복지사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의 총체(매슬로우 5단계 욕구 충족 도모 행태 또는 그 결과물)’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필자는 사회복지사에게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의 일정한 생활수준 및 보건 상태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정책 및 제도의 조직적인 체계정도로만 생각하는 우물에서 탈출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가 물질과학문명이 주도하는, 자본문화가 뿌리내려져 있는 21세기 현대사회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사회복지가 사회 안에 사는 모든 사회성원들이 일생 동안 행복하고 안정된 바람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사회적 노력(행정학사전, 2009. 1. 15. 대영문화사)’과 같은 문명적 또는 최소한 문화적 속성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계에서는 더 이상 사회복지를 복지서비스, 제도 또는 정책 등과 같이 문명(또는 문화)의 하위 개념으로 미시적, 제한적으로 인식접근하는 것을 지양하고, 물질과학문명이라는 표현처럼 사회복지를 문명과 결합시켜 그 개념을 광의적으로 인식체계화하는 노력을 앞으로 경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3. 사회복지에 문명적 특성을 입히자.


문명에는 보편성, 개별성, 전파성, 수용성이라는 4대 특성이, 문화는 공유성, 학습성, 축적성, 변동성, 다양성, 전체성(총체성)’이라는 5대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문화는 문명의 체계 안에서 존속하기에, 이 문명의 특성과 문화의 속성을 연결시켜보면 아래 [2]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의 특징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개인적으로 접한 사회복지관련 서적 또는 연구자료 등에서는 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정의, 사회복지의 탄생과 관련된 제 이론, 사회복지관련 정책 등만이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의 특성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회복지에 대한 과거적 접근은 제도 또는 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하였기에 특성이라는 개념을 부여할 여지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해본다.


2. 사회복지와 문명에서 필자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문명적 또는 문화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복지를 바라다보면, ‘사회복지는 사회복지시설의 문화와 지역사회라는 문화 그리고 고객(또는 그 가정)의 문화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상호작용에 의해 표출되어지는 지역사회 또는 고객 변화의 총칭(문명으로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자 양상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이는 곧 [2]에서 우리가 살펴본 10가지 문명과 문화적 특성은 사회복지에도 그대로 적용가능하다는 것이다. , 우리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를 제도 또는 정책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산출물로 인식하게 된다면, 사회복지 또한 미시적으로는 하나의 문화이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문명이기에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사업(또는 서비스) 등에서도 문명과 문화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제주특별자치도에 소재하고 있는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전국 16개 시도에 소재해 있는 200여 개소 장애인복지관과의 관계 속에서, 제도적으로는 보편성, 지리적 위치, 조직문화 또는 경영방법 그리고 사업체계 등에서는 개별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조사연구, 모델화 사업, 선진지 견학,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전파성과 수용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곧 우리나라 200여 개소 장애인복지관만 놓고 보더라도 하나, 하나의 장애인복지관이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모두가 < 보편성 속에서 개별성을 그리고 개별성 속에서 전파성과 수용성을 바탕으로 다시 보편성을 추구하고 있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회복지의 문명적 색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렇다면, ‘사회복지를 문명과 결합시켜 그 개념을 광의적으로 인식체계화하는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첫번째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문명의 진보적 성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21세기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국민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복지사에게 또는 인류애적 관점에서 도대체 어떤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두번째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명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불교대사전을 살펴보면, ‘내적 문명(정신문명)과 외적 문명(물질문명)’을 의미하는 내외(內外)문명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사람은 정신과 육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신세계를 계발한 정신문명과 육신의 풍요 안락을 가져다주는 물질문명이 균형 있게 발전되어야 온전한 문명이다.’라고 알고 있다. , 물질문명 또는 정신문명 중에서 어느 한쪽 문명이 지나치게 발전하거나 다른 한쪽 문명이 지체되면 발달된 문명이 도리어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양 문명이 조화를 이루도록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근본적으로는 정신문명이 주가 되어 물질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복지계가 또는 사회복지시설이 문명을 지향할 때 제도나 정책 또는 사회복지실천 스킬 등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구체적이고 명료한 미션과 비전 없이 복지사업을 전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사회복지사 개개인에게도 해당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사회복지사는 전문가 또는 실천가 이전에 사상가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에게 사회복지학도 중요하지만 인문학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세번째는 문명의 교류 특히, 정신문명의 교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4대 특성 중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은 문명교류의 객관적 필요성을 전제로 하고, 전파성과 수용성은 그것을 현실화하는 실천적 요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문명교류란 사실상 문명의 전파와 수용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명의 전파와 수용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2] 에서처럼 문명 상호간 관계 속에서 교류가 이뤄질 때 10가지 유형의 문명적, 문화적 특성은 어떻게 작용할까. 이에 관한 나름대로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으면, 이 문명 또는 문화의 교류는 미시적으로 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로 이해할 수 있기에 사회복지현장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문명의 전파에 대해 알아보자. 문명의 전파에는 한 문명요소가 다른 문명에 바로 전파되는 직접전파와 제3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파되는 간접전파(3자에 의한 연파(延播)와 점파(點播))’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문명의 전파 형태를 사회복지계에서 살펴보면, 사회복지사 개개인이 그 자신이 속한 특정 사회복지시설의 문명(또는 문화) , 조짐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직접전파에 해당될 것이고, 사회복지사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계에서 특정 사회복지 리더 또는 타 사회복지시설 의 조직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 정기적인 슈퍼비전 또는 직원교육 등을 통해)은 간접전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간접전파 중에서 정기적인 모임 등 또는 교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 상태는 연파에 해당되고, 리더의 사상이 담겨져 있는 언행 또는 특정 사회복지사업 및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영향을 받는 상태(: 워크샵, 보고회 등)는 점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문명의 수용은 무엇일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 문명전파에 의해 이동된 문명이 다른 문명 속에 합류 내지 정착되는 수용과정은 어디까지나 선택적인 과정(selective process)이기 때문에 문명의 모방성은 타 문명에 대한 수용을 필요로 하는 속성에서 비롯되며, 이에 문명의 모방(수용)은 자생적인 창조보다 쉽고 소모가 적으며 한층 나은 것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 이에 사회복지사가 또는 사회복지시설이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전파에 대한 문명의 모방 즉, 수용과정이 필수이다. 그렇다면 수용을 적극적으로 하면 누구나 진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문명은 진보의 필요성과 목표(방향)가 있고, 그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공유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변화와 발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5. 나가며.


필자는 사회복지는 물질과학문명이 주도하는 문명시대의 인류가 삶의 질 향상 상태(진보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행하는 즉, 사회 안에 사는 모든 사회성원들이 일생 동안 행복하고 안정된 바람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복지사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의 총체라고 정의하면서 21세기 사회복지에 있어서 문명의 색채를 입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첫 번째는 문명적 관점의 사회복지는 변화속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이라는 진보적 성향을 추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 두 번째로는 그 변화와 발전의 방향이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명에서 출발해야 함을 그리고 세 번째로는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시설 상호간 문명적 사고의 교류 특히, 정신문명의 교류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피력하였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사회복지사가 혹은 21세기 우리나라 사회복지계가 필자의 생각처럼 사회복지에 문명의 색채를 입힐 수만 있다면, 발전과 복지의 논리적 충돌은 더 이상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도와 정책 상호간의 충돌 그리고 문화와 문화 상호간의 충돌은 있겠지만 문명과 제도 또는 정책, 문명과 문화 상호간의 충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문명에 의해 문화가 탄생, 성장, 발전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제도와 정책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문명의 개념으로 접변(接變, acculturation)이라는 단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접변(接變, acculturation)은 문명의 전파와 수용과정에서 전파문명과 피전파문명 사이에는 불가피적인 접촉과정이 발생하는데, 그 발생 현상은 크게 융합(融合, fusion) 현상, 융화(融化, deliquescence) 현상 또는 동화(同化, assimilation) 현상’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개념(실크로드 사전 / 2013 / 창비)이다.


융합(融合, fusion) 현상은 순기능적 수용에 의한 접변 형태로 두 문명의 접변으로 인해 서로 다른 문명요소가 건설적으로 혼합되어 선진문명의 창조라든가 피전파문명의 전통문화가 더욱 발전하는 등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이 일어나는 현상을 통칭하며, 이에 반해 역기능적 수용에 의한 접변 현상으로서 융화(融化, deliquescence) 현상은 피전파문명의 해체나 퇴화 등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나쁜 결과를, 동화(同化, assimilation) 현상은 피전파문명이 전파문명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을 통칭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사회복지가 21세기를 리딩하는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타 제도와 정책 또는 문화 혹은 이를 포괄하는 타 문명 등과의 관계 속에서 융합(融合, fusion) 현상을 이끌어내는 개별적, 보편적 문명 색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복지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또한 문명적 사고관을 가진 사상가, 전문가, 실천가로서 성장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 사회복지사인 여러분이 진보의 필요성과 목표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하거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의지가 미흡한 상태에서 다른 국가(예를들면 OECD 소속 선진국가)의 복지 정책 또는 제도 등을 수용한다면, 모방에서 쳇바퀴 돌리는 상태만 될 것이고 창조는 발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


들어가며


인류의 먼 조상은 일찍이 850만 년 전에 출현했으며, 이후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 다른 동물과 달리 직립보행을 하며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이로 인해 두뇌가 발달함으로써 - 차츰 자연의 도전을 물리쳤고 15만 년 전에 이르러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즉, 인간의 지혜로 자연적 제약을 극복(미개한 상태에서 벗어나)하여 무리를(사회생활을) 이루어 살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제도 등이 발전하게 된 것 즉, 인간의 사회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질적·정신적으로 발전해 간 상태를 우리는 문명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문명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요. 문명(civilisa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키비스(civis ; 시민)나 키빌리타스(civilitas ; 도시)라는 단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서, 그리스 또는 로마 등과 같은 도시국가 또는 근대의 도시생활과 관련되어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18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문화cultura(경작)에서 유래된 농업과 관련된 개념임.)

 

문명의 생명은 공통적인 문명요소에 대한 공유성(共有性)’이다.


그럼 이와 같은 문명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학자들에 의하면 문명의 생명은 공통적인 문명요소에 대한 공유성(共有性)’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로는 문명은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된 결과물(물질문명, 정신문명)의 총체 즉, 인간의 지혜로 인해 사회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문명은 자생(自生)과 모방(模倣)’에 의해 탄생하고 발달하며 풍부해진다.


문명은 2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자생(自生)성이고, 둘째는 모방(模倣)성입니다.


문명의 자생성은 문명의 내재적이고 구심적인 속성으로 문명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규제하고, 문명의 모방성은 문명의 외연적(外延的)이고 원심적(遠心的)인 속성으로서 문명의 전파성(傳播性)과 수용성(受容性)을 낳는다.’고 합니다. (* 문명의 모방은 창조적인 모방이든 기계적(답습적) 모방이든 문명 간의 교류를 통한 전파와 수용 과정에서 현실화되기에, ‘교류는 모방에 의한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매체라는 점도 알고 있으면 좋을 듯싶네요.)


이와 같은 문명의 자생성과 모방성은 문명의 2대 속성인 동시에 문명의 발생과 발달의 2대 요소이기도 하답니다. , 문명의 자생성과 모방성은 서로 상부상조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거나 미흡하면 문명의 침체나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생과 모방이라는 문명의 근본 속성으로부터 보편성, 개별성, 전파성, 수용성이라는 문명의 4대 특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문명의 보편성(공통성)이란 같은 환경이나 여건에서는 물론, 때로는 다른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내용과 형태에서 유사한 문명이 창조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류는 항시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문명의 공유(共有)를 염원하는데, 이러한 보편성의 형성은 문명교류가 그 첩경이 될 수 있습니다.


문명의 개별성(고유성)이란 개개 문명이 자기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타 문명과 구별된다.’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개별성은 문명 상호간의 이질성을 조건지어주기 때문에 문명교류의 결정적 전제가 된다고 합니다. (*협의로 본다면 문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문명의 전파성이란 일단 창조된 문명은 물리적 거리나 장애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위에 차츰 보급 ·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명의 수용성이란 타 문명의 모방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문명의 전파에 의해 이동된 문명이 다른 문명 속에 합류 내지 정착되는 수용과정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문명의 모방(수용)은 문명의 자생적인 창조보다 쉽고 소모가 적으며 한층 나은 것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네요.


문명(文明)는 보편성을, 문화(文化) 개별성을 지향한다.


앞서 문명이란 인간이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하여 창출한 결과물의 총체(인류 사회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진보 된 상태)라고 한 것 기억나시죠, 그럼 문화는 무엇일까요.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자 양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유컨대 문명을 총체로서의 피륙이라고 한다면, 문화는 개체로서의 재료인 줄, 즉 씨줄과 날줄에 해당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문화는 전통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과거 지향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문명은 인류의 진보와 이성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미래 지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와 같은 문명과 문화는 위계적(位階的) 관계가 아니라 총체와 개체, 복합성과 단일성, 내재와 외표(外表), 제품과 재료 등과 같은 포괄적 관계로 인지 되어져야 합니다. 즉, 낱개의 돌이 만들어지고, 쌓여져서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물론 이 피라미드는 낱개의 돌(암석이 아니라 재단 되어진 상태의)과 비교 시 또는 낱개의 돌들이 피라미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산재 되어져 있는 상태(과거) 등과 비교 시 진보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고요.


팀 단위로는 문화를, 조직 차원에서는 문명을 추구하자.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을 사회복지시설을 비교하면서 연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사회복지시설은 문화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문명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제가 근무하고 있는 복지관도 조직 문화를 강조하고 있고, 저 또한 지금까지 문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과 개별성이라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문화를 말입니다.


이와 같은 문화의 특성 인지 여부를 떠나서 문화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타 복지시설과 비교해서 특정 복지시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즉, 개별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문화를 강조하는 것이 단순히 문화의 조성 단계에만 그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계에서 우월적 특정 사회복지시설의 폐쇄성을 심화시키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현상은 곧 연계협력이 강조되어지는 사회복지의 성질에 반하는 경쟁을 조성하는 혹은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유발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자 양상으로서, < 문명과 문화의 관계는 위계적(位階的) 관계가 아니라 총체와 개체, 복합성과 단일성, 내재와 외표(外表), 제품과 재료의 포괄적 관계이어야 한다 > 라는 의미를 잘 성찰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흥행(?)하고 있는 복지 마을 조성 붐또한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나가며


결론적으로 저는 사회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복지사의, 사회복지계의 인식의 틀이 사회복지시설 상호간 또는 사회복지시설과 복지관련 관공서와의 관계 그리고 이런 관계를 아우르는 사회복지계와 지역사회의 타 사회 영역(: 과학, 예술, 스포츠, 법 등)과의 연계성을 통해 추구해야 할 하나의 문명이라고 관점으로 틀어서 보는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시설은 복지 문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형태인지 등에 대해 개념을 정립하는 노력을, 달리 말하면, 사회복지시설 운영 측면에서 팀 문화 조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의 사회복지시설의 문명 조성(: 복지시설을 중심으로 한 에코시스템 구축운영 등)’의 형태로 조직 미션과 비전을 확대, 심화시키는 노력과 이에 바탕으로 둔 사업 체계를 연구개발하는 노력을 새롭게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문화(文化)라 함은 사전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반면에 문명(文明)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문화와 문명의 차이점은 사회(또는 사회 구성원)’인류가 될 것이다. 특정 사회에 국한되어진 것이 문화(개별성, 특별성 보유)이고, 전 인류를 포괄하는 것이 곧 문명(보편성, 공공성 보유)이 될 것이다.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2013)’라는 책을 보면 천하주의의 도량은 넓어서 하나의 종족이나 민족, 국가를 최고의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그것의 관심은 늘 온 세상의 인류였다. 이것이 바로 문명 제국의 커다란 기상이자 구도다. , 인류 전체의 문명적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기 한 몸의 이익에 국한된 문화적 자각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눈을 둔 문명적 자각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내가 주장하는 사회복지사는 사상가, 전문가, 실천가이다.’라는 명제와 관련해서 사회복지사는 사상가라는 측면을 아주 명료하게 그 지향점을 잘 뒷 받침해주는 설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서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차별적 능력을 갖춘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차별적 사업으로 설계되어진 복지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진력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지난 20여년의 노력이 타 사회복지사에게, 타 복지시설에, 지역사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고자 하니 그 미미함에 반성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 이유는 나를 중심으로, 내가 근무하는 복지관을 중심으로 또는 복지관이 소재한 지역과 고객을 정점으로 특화성을 추구한 것은 문명보다는 문화 조성에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기 폄하적 생각일까. 아니다. 문화든 문명이든 모두 궁극적으로 정체성(identity)문제로 향하는데, 문화적 정체성은 특수하고 통상 우리 것을 자기변호의 이유로 삼는 반면, 문명적 정체성은 보편적이고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인류 전체에 적합한 보편적이고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인류 전체에 적합한 보편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 문명이 ‘(인류 행복 측면에서) 무엇이 좋은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문화는 무엇이 우리 것인가에 관심을 두며, 오직 우리타자를 구별하여 우리에 대한 정체성을 실현하고 자신의 문화와 역사의 근원 감각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물론, 문화적 관점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명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문화만을 고집했을 때 그 문화 조성을 위한 노력은 매우 부정적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역사적 결과가 존재하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문화에 치중하다보면, ‘우리의 것이기만 하면 가치 측면에서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폐쇄적인 적과 아의 구분론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문화는 결코 인류적 측면에서 효과적인 가치정당성을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도 세계 제일이 되고자 했고 강국의 꿈을 꿨지만 결국에는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고 말았으며, 일본도 경제가 비상했던 1970년대에 역시 일본 제일을 꿈꿨지만 1990년대 초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적 쇠퇴에 들어섰고 오늘날까지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의 독일과 일본에는 군사력, 경제력, 금융력만 있었고 보편적 문명이 결여된 상태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할 만한 문명적 가치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양은 17세기부터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는데, 가장 앞섰던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모두 해상무역과 패권이라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명정신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결국 오래가지 못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19세기, 20세기에 한 세기씩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군사력과 물질적 실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근대 문명에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쉬린지 저/송인재 옮김,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2013)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복지계를 들여다 보며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에서 또는 각 시도별 소재 사회복지시설에서 정책/제도적으로, 사회사업 또는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전개되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은 문화적 관점일까, 문명적 관점일까. ,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우리나라 국민만을 위한 것일까, 우리 사회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사회복지사업은 계약을 맺고 있는 특정 고객만을 위한 것일까, 사회복지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각 개인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복지사회구현 또는 복지국가건설이라는 표현은 문화를 염두 한 표현일까, 아니면 문명을 지향하고 있는 표현일까.


내가 보기에는 문화적 관점에 포커스 맞춰져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맞는다면, 우리나라의 또는 사회복지시설의 복지 수준은 문화라는 테두리에 한정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직업문화와 충돌을 하는 상태로 가게 될 것이다. 실 예로 현재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문화복지문화가 충돌하는 양상 속에 있지 않은가. 이런 내부적 문화 충돌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 복지가 세계의 복지를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고, 항상 외국의 복지를 수입하는 복지 변방국으로 위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21세기 우리나라 사회복지계는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버리고 복지 문명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해야 된다는 것이다. 복지 문명 구현이라는 공공적,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시설이 그리고 사회복지정책/제도가 어떤 형태로 그 기능과 역할을 궤도 수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체계적인 방향을 정립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루소는 만인은 평등한 존재인데 사회문화(: 소유 제도 등)가 인간을 불평등 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시민사회 조성을 강조한 것으로 즉, '만인의 의지'보다 '일반의지'를 강조하면서 '만인에 의한 복지 공동체 구현'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복지문명을 조성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발전과 복지의 지리멸렬한 다툼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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