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은 인간자신의 본연의 모습 속에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믿고 그에 접근하는 것이며, 서(恕)는 현실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해 가는 것이다. (김시습)

 

 

자기 자신 및 특정 대상(국가·임금·주인 등)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도덕 규범을 가리키는 유교용어로서, ‘충성스럽다’나 ‘공평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가운데 중)자와 (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원안에 깃발이 꽂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중심’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자와 자가 결합한 자는 ‘중심이 서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에 중심이 서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는 마음에 중심이 잡혀있다는 의미에서 ‘공평하다’나 ‘충성스럽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이처럼 자는 본질적으로 '조금의 속임이나 허식 없이 자기의 온 정성을 기울인다, 다수의 사람 전체에 대하여 공평하게 성실을 다한다.'는 의미와 '인간으로서의 자기 발견을 추구하도록 함'이라는 가치를 가진다. 즉, 충이 단순히 국가·군주 등을 향한 상대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자신의 존재가 일체화되는 데까지 자신의 존재가 확대되는 데에서 비로소 본질적 의미에서의 충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충을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을 이에 두고 이를 ‘충신(忠信)’이라 하였으며, 주희(朱熹)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그것을 미루어 타인에게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서(恕)라 한다”고 해석하였던 것이다. (인용 : 네이버지식백과 /  [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음 내용은 [충경經]이라는 책자에 발췌된 것이다.

 

(1) 충의 대상은 자신에서 시작하여 가정은 중간이요, 국가는 종착지라 하여 국가가 가장 크고 마지막 대상이 되고 있다.

 

(2)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충의 도리로서, 백성에게 신망 있는 위정자의 충, 진실로 국가를 위해 희생적으로 직분을 다하는 관리, 즉 공직자의 충, 국법을 준수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하며 생업에 충실한 백성의 충 등을 말하고 있다

 

(3) 효도를 행하는 이는 반드시 충을 귀중하게 여기며, 군자가 효도를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충성을 하며, 충성을 다하면 복록(祿)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충(忠)과 서(恕)의 개념을 잘 알고, 이를 제대로 행할 수만 있다면, 21세기에 그토록 외치고 있는 인권은, 인권보장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공동체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http://www.jejubok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06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아래와 같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변화의 주체로 당신을 변화시켜라. - 제주사회복지신문

1. 내가 선을 긋는 순간, 나는 그것밖에 안 된다.(심권호, 레슬링선수)누가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딱 나 자신이 상상한 만큼만 현실로 이루어진다.’라는 표현이 있다. 곱씹어보면

www.jejubokjinews.com

 

1. 내가 선을 긋는 순간, 나는 그것밖에 안 된다.(심권호, 레슬링선수)

 

누가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딱 나 자신이 상상한 만큼만 현실로 이루어진다.’라는 표현이 있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그 음미의 맛이 매우 깊은 명언 중 명언이다.

 

이 명언은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만든다. ‘군자는 그릇에 안주하면 안 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씀 말이다.

 

상기 두 가지 표현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변화의 수용, 그것도 적극적 수용, 달리 표현하면 적극적 변화 촉진아닐까.

 

그럼, ‘적극적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3-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영감을 안겨다주는 사회복지현장가, 사명을 바탕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복지현장가, 조화 속에 공유가치 구현을 실현시키는 사회복지현장가모두 좋은 표현이다.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답답한 것은 바로 이런 사회복지현장가가 되기 위해서 나는 언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그 보이지 않는 길은 매뉴얼처럼 정답이라는 형태로 존재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미션 대비 맞춤형 길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맞춤형 길은 타인이 나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롯이 나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 그 맞춤형 길은 나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의뢰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럼 나는 나에게 맞는 그 맞춤형 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누가 그 미래를 결정하는지는 압니다. 삶을 이끄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바로 여러분이 꿈꿔오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도전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고, 도전을 통한 극복은 인생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해지면, 나에 대한 선택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와 같이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삶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남에게 그 권한을 넘겨주어선 안됩니다. 절대로 잊지 마세요, 삶의 가장 큰 기쁨은 존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2. 만약 당신이 꿈을 꾸고, 그 꿈을 간직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클라라 휴스 Clara Hughes, 사이클 및 스케이팅 선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변화 도모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A라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홍길동이라는 직원이 출근하는 것도 싫고, 직무를 수행할 때 재미도 없고, 동료 혹은 고객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만 받는다.”고 할 때, 이와 같은 부정적 감정에 대한 원인을 직장 문화, 직무 유형 또는 강도, 동료 직원 및 고객의 성격 등에서 찾고자만 한다면, 홍길동이라는 직원은 부정적 감정 상태에서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어떤 변화의 흐름이 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그 변화의 흐름을 좌우지할 수 있는 선두에 서는 것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맨 뒤에 위치하여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란이 새로 변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계란이 계란인 채로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계란과 같다. 그리고 당신은 그냥 계속 평범하고 상하지 않은 계란으로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부화하거나, 상할 수밖에 없다.(C. S. Lewis)

 

필자는 당신에게 선두에 설 것을 권유한다. , 생각 없이, 의지 없이, 준비 없이 선두에 설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그 변화는 나 자신이 선두에 서지 않고서는,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함을 안내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변화를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가 있으면, 불균형이 발생하고, 그 불균형을 안정화시키는 단계가 필요하며, 이후에 이와 같은 안정을 일정기간 이어지는 기간도 존재하는 법이다. 단지, 당신이 어떤 단계에 위치해 있더라도, 변화의 특정 영역과 그 시점의 도래에 대한 인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함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재차 강조한다. 당신이 꿈을 꾸면, 당신은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변화의 성격이요, 원칙이며, 가치이고, 진실인 것이다.

 

이에 대해 간디그대의 믿음은 그대의 생각이 된다. 그대의 생각은 그대의 말이 된다. 그대의 말은 그대의 행동이 된다. 그대의 행동은 그대의 습관이 된다. 그대의 습관은 그대의 가치가 된다. 그대의 가치는 그대의 운명이 된다.”라고 강조한다.

 

 

3. 당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현재 한계를 확인하고,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피카보 스트리트 Picabo Street, 스키선수)

 

변화의 추구는 기존의 사회를 보다 바람직한 상태로 장래에 변화시키고자 정책결정 과정에서 설정된 막연한(추상적인) 목표를 근거로 하여 명확한(구체적인) 목표로 다시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적용 가능한 방법을 의도적으로 개발/선택하는 계속적인 지적 활동이라는 의미를 갖는 기획(企劃)과 유사하다.

 

그럼 우리나라 사회복지현장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회복지현장은 결핍욕구 충족에서 존재욕구 충족으로, 복지지수 충족에서 행복지수 충족으로, 시혜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대인복지에서 지역사회복지로, 민간사회복지에서 공공사회복지, 사회복지에서 사회보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은 당신의 제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더 당신에게 묻는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당신의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그 꿈을 통해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당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가, 당신이 소속된 조직을 변화시키고 싶은가, 아니면 지역사회 혹은 국가 전체를 바꾸고 싶은가. 혹시, 포부는 크나, 자신감은 한없이 낮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진정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그런 존재로 당신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그리는 꿈에 대한 정리를 변화추구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두 번째로 그 변화를 추구할 주체인 나 자신에 대한 SWOT분석을 시도하길 권유한다. 그리고 그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나 자신의 능력을 ERRC* 하길 바란다. (*ERRC : 블루오션을 찾기 위한 기법으로 제거 Eliminate, 감소 Recude , 증가 Raise, 그리고 창조 Create’를 의미한다.)

 

문제(問題)는 시작(始作) 단계에서부터 태동된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긍정적인 측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무엇을 추진함에 있어, 내가, 우리가 얼마만큼 잘 준비하고 있는가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기억하자, 변화라는 나비효과는 너 자신을 알라.’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4. 당신의 그 어떤 것에도 한계를 두지 마라. 그리고 이것을 명심해라. 당신이 더 큰 꿈을 꿀수록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마이클 펠프스 Michael Phelps, 수영선수)

 

변화구현을 위해 나 자신을 어떻게 ERRC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파악/결정했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변화구현을 위한 문제선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래 표를 보자.

 

사고를 당한 홍길동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음주운전, 싱크홀 미관리, 늦은 제설 작업은 정보의 수집과 그에 따른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져 있는 상황이다. , 3가지 상황에 대한 신속한, 정확한 제 조치가 있었다면,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본 분석결과는 겨울철 자동차 사고는 음주운전금지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도로 관리가 동반 수행될때야 그 예방 효과가 큼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제 예방 및 해소라는 꿈을 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그 꿈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어렵다. 당신이 예방 및 해소하고 싶은 사회문제에 대해 분석을 하면, 최소한 문제가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이며, 제약요인은 무엇인지를 구분할 수만 있으면, 그 길은 명료하게 보인다.

 

바로 문제 예방 및 해소를 위해 문제점을 예방 및 해소하기 위해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 이때 상기 SWOT분석과 그 분석결과에 따른 ERRC차원의 개인적 역량강화는 필수적으로,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5. 목표를 정하고, 집중하고, 훈련하고, 노력하라. 그리고 당신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황홀감을 느껴봐라. 이것이 바로 삶을 사는 것이다.(크리스티 야마구치 Kristi Yamaguchi, 피겨선수)

 

버니샌더슨 상원의원은 항상 시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세상은 모두가 충만하고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서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현실입니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같이 해봅시다.”

 

이처럼 변화는 조직이, 아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조직이 무엇인가 성취하는 데는 기술 자원, 경제적 자원, 조직의 구조, 혁신, 시간관리 같은 것보다는 조직의 기본 철학이나 정신, 추진력 등이 더 중요하다. 물론 성공하려면 앞서 말한 것들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직의 기본 행동 지침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그것을 충실하게 실천한다면, 그런 문제들은 초월할 수 있다.(출처: 메이요 클리닉 스토리)’

 

앞에서 우리는 사회문제 분석도 했고, 나의 역량강화를 위한 SWOT분석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ERRC기법도 적용해보았다. 이제 이 결과를 바탕으로 혁신(Innovation)이라는 변화를 작게는 개인적 관점에서, 넓게는 조직 혹은 지역사회 또는 국가라는 차원에서 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innovation = in(안으로) + nov(새롭게) + ation(하기)

 

한 마디로 당신이 이끌어낼 변화는 당신의 신념과 철학, 사회복지조직의 이념, 고객의 욕구, 지역사회의 특성 및 정책적 요구등이 훌륭하게 버무러진 비빔밥과 같은 것이다. 이때 눈 앞에 놓여 있는 그릇안에 담겨져 있는 비빔밥 재료들을 과감하게 섞을 자신감을 발휘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주저거리거나, 회피를 하거나, 거부를 하면 그 변화의 물결은 사라져 버린다.

 

열정 없이 성취된 위대함은 없다. 열정은 자동차 연료와 같다. 우리가 좋아하고 간절히 바라는 어떤 목표를 추진하도록 고무하는 활동적인 에너지이다. 때로 힘든 문제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왜 이처럼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후회하며 친구들이 포기하라고 권해주지는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그럴때에도 "포기하지 마", "손을 떼면 안 돼" 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오곤 한다. 그 목소리가 바로 열정이며, 우리가 지켜야 하는 또 하나의 고귀한 인생의 진리이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역시 갈등 끝에 결국 이 목소리를 따랐다.(인용: 존 템플턴, '열정' 중에서.)

 

명심하자. 당신이 기획하는 사업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내 자신의 행위 결과가 향후 어떻게 평가 받을 것인지 등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일관된 가치창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이 환경정보분석를 통한 문제인식과 대안창출 및 선택, 그리고 이렇게 선택한 대안을 목적성의 원칙, 융통성의 원칙, 전체합의의 원칙. 계속성의 원칙, 통제성의 원칙 등을 바탕으로 잘 추진한다면, ’효과적인 거버넌스 체제 구축, 고객 및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성 제고, 조직운영의 효율성 강화, 조직 구성원 상호간 가치의식 공유 및 통합, 질 좋은 의사결정 구현(조직 내외의 커뮤니케이션 촉진), 자기성찰의 기회 및 책임성 제공, 전략적 사고 촉진 및 학습조직 구현, 자존감 향상, 전문직업적 정체성 강화 등과 같은 엄청난 열매를 수확할 것이다.

 

 

6. 하든지 안 하든지 둘 중에 하나지. 그냥 노력하겠다는 말로 대충 넘어갈 생각하지 말아라.(김연경, 배구선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 국민과 인류의 삶의 향상과 공영이라는 표현이 있고, 우리나라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은 전문에는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사회보장기본법 제7(국민의 책임)를 보면, ’모든 국민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립ㆍ자활(自活)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며, 더불어 모든 국민은 ~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에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기와 같은 법률적 표현은 사회복지사의 전문직업적 정체성을 표방하고 있다고 본다.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과 나는 대한민국 헌법과 사회복지사 윤리강령 그리고 사회보장기본법 등에서 천명하고 있는 그 변화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더 나아가서 개척하고 있는지 말이다. 더 나아가 시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탄탄한, 편안한 대로(大路)를 만들어주는 전문가로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지 말이다.

 

쫄지 말고 그냥 쏴. (안산, 양궁선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이대훈, 태권도선수) 도전을 안 했다면 후회가 남았겠지만, 도전했기 때문에 후회와 아쉬움은 전혀 없다. (우상혁, 높이뛰기 선수) 4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나는 1초에 1년을 걸었다. (양학선, 체조(도마) 선수) 승리한다는 것은 항상 첫 번째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승리의 의미는 자신보다 현재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보니블레어 Bonnie Blair, 스피드스케이팅선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고 있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만 하지 마라.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페기 플레밍 Peggy Fleming, 피겨스케이팅선수)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다. 계속 도전하라. (니시아리안, 탁구선수)

 

필자는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이 이런 스포츠맨십을 보이는 사상가요, 실천가이며, 전문가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권하고, 바란다. []

 

https://blog.daum.net/swk3951/791

 

당신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사회복지인 천방지축 생존전략 5)

1. 들어가며 “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자신 있게 “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blog.daum.net

https://blog.daum.net/swk3951/782

 

사회복지인 천방지축 생존전략 4 -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http://www.jejubok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4 잠자는 당신 자신의 꿈을 깨워라. - 제주사회복지신문 1. 들어가며필자는 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 존재론적인..

blog.daum.net

https://blog.daum.net/swk3951/773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3) -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이 글은 현재 '제주사회복지신문(발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에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존재가치에 눈을 떠라 < 시론 < 오피

blog.daum.net

https://blog.daum.net/swk3951/766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2)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1. 들어가기 2021년 12월말까지 제주사회복지신문에 연재(월 1회)되는 이 글(타이틀 :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은 ‘생존전략’이라는 용어의 그 성격상,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떻게 하

blog.daum.net

https://blog.daum.net/swk3951/758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1)

바램 하나 - 직장생활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램 둘 - 이 지긋 지긋한 직무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 바램 셋 - 동료직원 또는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바램 넷 - 계속해서 급여도

blog.daum.net

 

 

우리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그 이유를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인간은 의욕하는 것 그리고 창조하는 것에 의해서만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일까, '의욕과 창조'만이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것이...

 

일이 재미있으면 인생은 낙원이고, 일이 의무이면 인생은 지옥(고리키)인 법이다. 그래서 '의욕과 창조'가 '행복'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 아닐까. 달리표현하면, '진정으로 내가 바라고, 그 바램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행복이며, 행복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선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일(보봐르)'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의욕이 넘치고, 그 의욕을 바탕으로 그 무엇인가를 창조했더라도 그것 자체가 나에게만 의미있는 것이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성취한 것'이 아닐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욕과 창조'를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허지슨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얻는 행동이 최선이다.'고 하였고, 쥬베르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고통을 면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기의 이익을 아주 적게 생각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소유'라고 생각된다, 법정스님이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던 바로 그 '무소유'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착한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재앙을 내린다(명심보감).'고 강조했던 것 아닐까.

 

 

' >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비지혜 (不費之惠)  (0) 2021.04.12
제사(기제 - 시제 - 묘제)와 차례  (0) 2021.04.12
벚꽃 - scenery of jeju 4  (0) 2021.03.23
채움의 미  (0) 2021.03.16
목련(꽃) - scenery of jeju 3  (0) 2021.03.09

 

1. 식(識) 단계

 

(1) 학(學)

 

자는 (절구 구)자와 (집 면), (효 효), (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자 위로 자를 감싼 양손이 이미지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에 자는 배우다공부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더불어 자는 배우다, 공부하다.’는 의미를 바탕으로 < 철학(哲學) 또는 전문적(專門的)인 여러 과학(科學)을 포함(包含)하는 지식(知識)의 조직체(組織體). 곧 현실(現實)의 전체(全體) 또는 그 특수(特殊)한 영역(領域) 및 측면(側面)에 관()하여 체계화(體系化)된 지식(知識)의 계통적(系統的) 인식(認識) 이라는 명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를 간단히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학문(學問) 이다.

 

결론적으로 동사로는 배우다, 공부하다는 의미를, 명사로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 이(而)

 

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지금의 자는 ‘~로써‘~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 자는 말을 이어주는 글자, 달리 표현하면 연사(連詞, 접속사)에 해당하며, 주로 동사성 성분(형용사도 이어 주기는 한다)을 이어 준다. 의미 상으로는 순접(~하고, ~하며 등)과 역접(~하지만, ~하나 등)이 모두 가능한 유연한 연사이다. 그 외에 드문 경우지만(주로 한문이 정립되기 이전의 고대 중국어에서) ‘자네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 처럼 ''라는 뜻의 2인칭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3) 불(不)

 

명사 앞에 위치하여 하지 않다, 은 아니다.’란 동사적 의미를 갖는다.

 

(4) 사(思)

 

자는 생각하다, 사색하다라는 동사적 의미외에 생각이나 심정’, ‘정서또는 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이라는 명사적 뜻을 가진다.

 

원래 자는 (밭 전)자와 (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자는 머리()와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자가 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5) 즉(則)

 

은 아래와 같이 2가지 의미를 갖는다.

 

(1) 첫째 법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자는 (조개 패)자와 (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의 금문으로 보면 자가 아닌 (솥 정)자가 이미지그려져 있었다. 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자는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는 이렇게 신성함을 뜻하는 자에 자를 결합한 것으로 칼로 솥에 문자를 새겨 넣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금문(金文)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 솥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솥에는 어떤 글들을 적어놓았을까? 대부분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들을 적어놓았다. 신이 전하는 말이니 그것이 곧 법칙인 셈이다.

 

이때 법칙 칙자로 읽히며, < 1. 법칙(法則), 2. 준칙(準則), 3. 이치(理致) >라는 명사적 의미와 함께 ‘4. 본보기로 삼다, 5. 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와 같이 동사적 의미도 갖는다.

 

(2) 둘째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본 경우는 법칙 칙()이 가차(假借)되어 곧 즉()‘자로도 사용되는 경우이다. 이에 < (), 만일(萬一) ~이라면 (), ~하면, ~할 때에는 () > 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천즉천(一賤則賤) 또는 필사즉생(必死則生) 이 이에 해당된다.

 

(6) 망(罔)

 

자는 ‘(금수, 어류 및 죄인 등을 잡는)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그물 망)자와 (망할 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에 이미 그물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망할 망)자를 더한 자도 그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 자는 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별체(別體)자인 것이다.

 

자는 단순히 그물이라는 뜻 외에도 그물에 걸려든 상황과 연관되는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자가 가진 의미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사리에)어둡다, 멍하다또는 속이다등과 같은 의미도 갖는다.

 

(7) 태(殆)

 

자는 뜻을 나타내는 죽을사변((=), 죽음)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재난(災難)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태ㆍ이)로 이루어진 회의문자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는 (뼈 알)자와 (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부서진 뼛조각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자는 수저와 입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미치다 태)자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결과 자는 죽음을 뜻하는 자와 자를 결합해 < ‘거의 죽음에 이르다, 위태롭다 등’ > 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다만 지금의 자는 ()에 통하여 거의장차라는 뜻만 남아 있다.

 

 

2. 지(知, 智) 단계

 

 

(1)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학이불사(學而不思)’?!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많으나, 그 지식을 쓸 방법을 모르거나 또는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해보지 않음으로 인해 알기는 하나 알지 못함과 같은 답답하기만 상태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만 지식을 학습하고 사용하게 되면, 분절적 상태로 축적되어져 있는 지식에 우리 인간은 사로잡혀 버린다. 예를 들어, 특정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 대한 분석 및 이해 등이 없이 단지, 문서상의 지침 또는 매뉴얼만 강조하는 답답한, 고지식한, 융통성이 없이 행하는 모습은 바로 학이불사(學而不思)’에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 금방 수능이다.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지식을 왜 중고등학교때 그렇게 공부를 많이했는지 모르겠다고... 스펙(spec)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그 옷(스펙)이 어울리는지 등에 대한 판단도 없이 입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어떤 것라도, 취업에 성공한 타인이 취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혹은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시되어지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취하고자 하는 자세 또한 학이불사(學而不思)’의 모습이다. 스펙(?)만 있으면, 당연히 취업에 성공할 것이라는 헛된 꿈, 소망에 휘둘리는 모습말이다.

  • 그러나 입사 면접 등에서 요구되어지는 것은 1+1=2만은 아니다. ‘1+1=2라는 스펙만, 지식만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누구나 한다는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는 면접 방향도 존재함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조직에서는, 사회에서는 일정 단계까지만의 지식을 원하는 영역이 있는 반면에 그 이상의 사고를 원하는 영역 또한 별도로 공존하는 것이 법칙인 것이다.

  • 지식을 습하는 기준, 즉 사상이 제대로 서있지 않으면, 불필요한 지식만, 축적되지 않는 지식만 습득하게 된다. 법정의무교육 중에 인권 교육이 있다. 매해 2회씩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럼 10년동안 20회 이상 교육을 받은 직원은 1년 동안 2회 교육을 받은 직원보다 인권에 관한 지식이 풍부할까. , 그렇지만은 않다. 이처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주위에는 정말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온오프라인 상태로 널려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 섭취하지도 못할 방대한 양이다.

  • 한 번 생각해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다 섭취해야만 할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물을 이해하기 위해 지구의 오대양을 다 알 필요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인 것이다.

  • 그렇지만 사회복지현장에서는 종종 이와 다른 모습과 조우하곤 한다. 그저 막연히 기획에 대한, 사례관리에 관한, 조사연구에 대한, 통계에 관한, 네트워크에 대한, 패러다임에 관한 정보와 지식 등을 취하기만을 갈망하는 모습 말이다. 과연 그 사회복지현장가는 왜 자신이 그 정보와 지식을 그토록 취하고자 하는지, 그 정보와 지식을 어디에 사용하고자 하는지, 그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신념을 가지고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타 사회복지현장가 대비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애씀(: 승진 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것이 현실이라면, < 그 애씀에 는 있을 지언정, 고객은, 사회복지는 없음. >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2)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하는 맘이 앞서서, 영법을 배우지도 않고, 바다의 특성 등에 대한 이해도 없이,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겁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 사회복지현장가는 나름 자신의 생각 및 의지 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자신의 생각 및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등대가 되어줄 사상을 정립하고 체계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기획나의 또는 내가 속한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사상의 실천 계획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례관리사업관련 계획서를 그 누가 작성하던지 동일한 사업형태로 계획, 추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의 생각이 반영 안 된, 나의 의지를 녹여내리지 못한, 나의 사상이 구현되지 않은 타인의 사업계획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모방, 추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 반면에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글을 배움은 천년의 보배요, 물건(物件)을 탐함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다.’學文千載寶 貪物一朝塵(학문천재보 탐물일조진)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학문(學問)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努力)해야 한다.’學如不及(학여불급)을 강조함과 더불어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學如逆水(학여역수)를 깨닫게도 해준다.

 

 

3. 행(行) 단계

 

필자 생각으로 <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관계와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하는 가운데 하지 않으면, 전통, 과거 등과 같은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곧 우물안 개구리에 만족해서는 안 됨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전통이나 과거 등과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변화하면서 나아가라는 것이다.

 

둘째,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하는 가운데 함에 충실하지 않으면, 근본이 없는 관계, 즉 탄탄하지 않은, 회귀할 수 있는 관계가 없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본다. 모든 동물과 물질 등의 운동에는 회귀라는 탄력성을 보유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도 이와 유사하다고 본다. ‘변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나아감이 아니라, 관계(반석)을 바탕으로 나아감(변화)과 되돌아옴(관계 성장)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더 나아감(새로운 관계 구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무리 지어 보면, 사회복지의 발전은 사회복지사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 개개인의 변화가 축적되어야만이 구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조직의 발전이 조직원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 개개인의 변화가 축적되어야만이 구현 가능함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성장된 조직을 바란다면, 무형의 조직을 향해 자꾸만 요구하지말고, 그 무형의 조직의 한 일원인 나의 현재 역량을 겸허히 고찰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나갈 것인지를 설정하여, 담금질을 하도록 하자. 그러면 조직이 어느 순간 함께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1. 미래지향적 삶?!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우리 인간이 이토록 행복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후의 삶에 대한 행복, 즉 천국행에 대한 갈망때문 아닐까. ‘현세의 행복과 평화가 내세의 천국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그 이유 아닐까.

 

당신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실존한다고 생각하면, 그 모습은 서로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혹, 아비규환의 모습 대비 근심걱정 없는 모습인가.

 

내세의 지옥, 연옥, 천국 등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우리의 존재적 한계로 인해 가타부타 논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지만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과 결부지어 아래 표와 같이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해서, 살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필자는

 

  • 지옥(地獄)결과에만 집착하는 과거이고,

  • 연옥(煉獄)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갈등 및 성찰하는 단계현재이며,

  • 천국(天國)변화, 발전 등을 추구하는 미래라고

 

조작적으로 정의한다.

 

달리 표현하면,

 

< 진리를 식()하고,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식()을 체계화하며, 즉 지()하고, 이와 같은 식()과 지()를 길라잡이 삼아 제대로 행하고자 꾸준히 노력(()) >하면, 이것이 바로 행복이요, ‘천국(天國)’ >

 

이라는 것이다.

 

이런 필자의 생각은 나름 가치가 있을까.

 

 

2. 미래지향적 삶의 전제 조건, 성찰(省察)

 

당신은 ‘행복이 무엇인지, ‘불행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너와 나처럼 행복은 이것이고, ‘불행은 저것일까.

 

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다를 지언정, 이 두가지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행복이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유형의 물질들처럼 인식할 수 있고, 지칭할 수 있으며 그리고 소유할 수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불행을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필자 또한 현재의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마태오복음 53-10에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행복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들려주신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라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상기 복음 말씀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복음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의 관점이 될 것이다. 즉, 상기 말씀의 각 문장을 귀납적으로 이해해야할까, 아니면 연역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의 차이가 될 것이다.

 

필자는 상기 복음 말씀을 아래와 같이 해석, 수용한다.

 

‘말씀(서로 사랑하라)’을 실천할 수 없다면, 평화를 이뤄낼 수가 없다.

평화를 이뤄낼 수 없다면, 마음이 깨끗할 수가 없다.

마음이 깨끗할 수 없다면, 자비로울 수가 없다.

자비로울 수 없다면, 의로움에 목마를 수가 없다.

의로움에 목마르지 않다면, 온유할 수가 없다.

온유할 수 없다면, 슬퍼할 수가 없다.

슬퍼할 수 없다면, 마음이 가난하다고 할 수 없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씨앗)을 제대로 씨 뿌리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진정 슬퍼할 줄 모른다면, 그 씨 뿌림의 가치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그 가치 구현 등을 위해 필요한 제 노력를 우리는 온전히 기울일 수 없을 것이며, 그 결과 우리가 바라는 ‘평화 속에서 행복 향유’라는 선물은 궁극적으로 추수 할 수 없다.‘

 

고 할 수 있겠다.

 

 

3. 미래지향적 삶의 필수 자세, 실천(實踐)

 

묵자는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고 하였으며,

공자는 어디를 가든지 마음을 다해 가라고 하였다.

 

이는 곧 우리가 그리는 '행복한, 평화로운 삶의 영위'는 물질적 심신의 안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식(識)을 넓히고, 성찰을 통해 지(知)를 심화시키며, 이 식(識)과 지(知)를 바탕으로 삶의 신념을 세워 실천(行)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인류의 번영과 세상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그 과정’을 지칭한다는 것이다.[끝]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은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떤 사회복지사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공자는 '공야장'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老子安之 노자 안지

朋友信之 붕우 신지

少者懷之 소자 회지

 

(나는) 윗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든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다고 인정 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는) 친구에게는 '절대적 믿음을 안겨다주는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는) 아랫사람에게는 '그 사상과 언행을 마음에 품어 칭송 및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를 사회복지현장에 빗대어 살펴보면

 

사회복지사인 나는, 우리는

 

상사와 고객 등으로부터 '인정받는'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현장 동료와 지역자원 등으로부터 '신뢰받는' 사회복지사가

청소년과 예비사회복지사 등으로부터 '칭송받는'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공감한다면,

하나 더 같이 생각해봅시다.

 

'인정받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신뢰받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칭송받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실천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과 정()에는 출발점과 반환점과 귀착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도 그렇고

직장 생활 또한 그와 같으며,

전문직업적 정체성 등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방황아닌 방황을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등과 같은 질문과 벗삼아.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상 즉, why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why없이 how, what은 행할 수 있지만

이음은, 시너지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실천에 아무리 전문성과 실천성을 더한다고 한들

그 중심이 되는 사상 즉, why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체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죠.

 

공자는 克己復禮爲仁 (극기복례위인) 이라고 강조 하였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이를 사회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면 바로 why가 될 것입니다.

 

아래의 빈칸을 어떤 내용들로 채워보고 싶습니까.

 

 

 

한 번 기술해보세요.

그리고 연사업계획에 반영시켜보세요.

사회보장 관련 안젠다 등으로 그려내어서 제안해보세요.

 

어느 순간 사회복지사로서 나 자신이

대인관계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과 사회복지분야에서

사상가로서, 전문가로서 그리고 실천가로서의 선순환 행태를 보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끝]

윈스턴 처칠의 명언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The price of greatness is responsibility.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언뜻 단순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의미는 매우 깊다고 본다.

 

나 자신이 리더이고자 한다면, 조직이 존중과 존경을 받고자 한다면,

 

나와 조직 그리고 조직원에 대한

더불어 그 관계망과 관련하여

 

‘책임감’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위대함은 책임감을 전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자도 ‘군자 모도 불모식 (君子 謀道 不謀食) / 군자 우도 불우빈 (君子 憂道 不憂貧)’이라고 하였다. 흔히,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식과 빈을 도모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지만,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고 신윤복 저)>에서는 ‘군자는 이웃이 식과 빈 즉, 물질욕 충족으로 인해 존재욕 즉, 도 추구를 멀리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형태로 접근, 해석한다.

 

이렇게 보면, ‘이상과 신념을 잃은 무장은 싸우기 전부터 패한 것이며,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명언처럼, ‘사상과 신념’이 바탕이 되지 않은 ‘책임감’은, ‘위대함’은 ‘불완전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책임감’은 어떻게 발현될까.

 

사견으로 ‘사상과 신념이 바탕이 된 책임감’을 중심으로 신뢰 하에 사람과 자원 등이 집중하는 형태로 발현된다고 본다.[끝]

들어가며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라는 책의 겸애(兼愛)편을 보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글귀가 적혀 있답니다.

 

  • 공자는 원망(怨望)으로 인해 불협화음을 내는 공동체를, 잘 조화된 음악과 같은 화합의 공동체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인(仁)입니다. 이런 공자의 사상을 간단히 개괄하자면 원망(怨望)에서 화합(和合)으로의 전환, <원(怨) → 화(和)>죠.
  • 묵자의 사상을 상기 공자의 사상처럼 간단히 표기하자면, ‘각자 따로(別)’에서 ‘모두 아우름(兼)’으로의 전환, <별(別) → 겸(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서로 자기 이익 만을 꾀해서 상대를 해치고 핍박 하는 별(別)의 상태를 ‘서로가 상대를 대등한 이익 향유의 주체로 인정’하는 겸(兼)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별(別)이라는 극단적 이익 투쟁이 전개되는 공동체를, 서로 이익을 공유하고 호혜적으로 이익을 주고받는 겸(兼)의 공동체로 바꾸려 하는 것, 이것이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인 것입니다.

 

, 이와 같은 두 사상가의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좀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공자 - pxhere.com 무료 이미지 

 

공자의 화(和)

 

우선, 공자의 <() ()>를 살펴볼까요.

 

첫째, 방향은 있으나 어디까지인지가 불명확하다?!

 

()이니 화()이니 하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도 추상적이네요. ‘원망으로 가득 찬 세상, 불협화음을 내는 공동체라는 것이 실존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화합(化合)으로 가득 찬 세상, 화합(化合)을 내는 공동체라는 것 또한 추상적일 수 밖에 없겠죠. 달리 말하면, 그 세상의 또는 공동체의 화합의 상태’가 개개인이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둘째, 백성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선 사상은 아니다?!

 

() 또는 화() 등과 같은 추상적, 관념적 개념에 대해 그 당시 모든 사람(왕으로부터 하층민까지)이 이를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입니다. 전란 속에서, 기근 속에서 이런 사상적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사상을 위해 필요한 학습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여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관료, 귀족, 왕족 등과 같은 소수의 특권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공자의 사상은 일반 백성에게 현실감있게 다가설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셋째, 누구나 취할 수 있는 보편적 사상이 아니다?!

 

공자는 <() ()>로 바꾸는 역할을 그 당시 하층민에서 요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이죠. 간단히 말하면 원() 과 화()라는 개념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자는 관료, 귀족, 왕족 등에게서 이와 같은 사상관을 설파하고, 이들이 충실히 이행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국가를 화()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째, 탑다운 형태의 사상이다?!

 

관료, 귀족, 왕족 등이 중심이 되어 화(), ()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은 공동체 또는 국가 차원에서 보면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백성의 생각이 제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성들보고 여러분에게는 화()에 대해 고민한 관료, 귀족 또는 왕이 있으니 이들을 믿고 따르면 개별적 또는 공동체 차원에서 화()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결국, ()의 상태를 희망하는 백성에게 화()는 관료, 귀족, 왕족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여러분들은 이들에게 그 모든 결정 권한을 위임하고 충실히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전형적인 오너 또는 최고경영자 중심의 ‘Tob down’ 조직 운영 방식이라고, 관료적 조직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복지의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전문가 중심의 또는 시혜적 관점의 복지사업 전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자의 겸(兼)

 

[크리스천 라이크&에듀 라이프]에서 발췌

 

그렇다면, 묵자의 겸(兼) 사상관은 어떨까요.

 

묵자의 사상은 각자 따로()’에서 모두 아우름()’으로의 전환, <() ()>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공동체 즉, 국가의 백성들을 개별, 개별에서 하나로 아우르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쉽게 얘기하면, 각자의 개별적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집약, 결정해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구체적이다.

 

<() ()>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기는 하나 그 대상이 공동체 또는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백성에서 왕까지 모두 포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자의 <() ()>보다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 공동체적이다.

 

특정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공동의 이익을 규정(또는 설정)하여 이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상호 달성 될 수 있는 공동체 지향이 중요하다는 개념은 관료, 귀족 또는 왕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의 이익을 설정하고 그 과정 속에서 개별 이익을 상호 달성할 수 있도록 조력할 것인가라는 논의 구조, 추진 구조에서 일반 백성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죠.

 

셋째, 보편적이다.

 

공자는 <() ()> 체계에서는 공동체를 통제하는 관료, 귀족 또는 왕족의 사상이 중요했습니다. 반면에 묵자의 <() ()> 체계에서는 일반 백성들로부터 왕족까지 각자의 생각을 차별하지 않고, 소외됨이 없이 모아서 하나로 모아보자라는 관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묵자는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직위의 사람보다는 차별 없이 각자의 생각을 제대로 수렴할 줄 아는, 이렇게 모아진 생각들을 가지고 소외됨이 없이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또는 묶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조정자, 중재자 또는 퍼실리테이터와 같은 존재를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신분에 관계없이 백성을 관리·채용하는 능력위주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넷째, 위와 아래가 없는 수평적이다.

 

공자와 묵자 모두 <() ()> 체계 관점 또는 <() ()> 체계 관점에서 팔로워는 리더에 절대 순종해야 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화() 차원에서의 팔로잉은 팔로워의 생각이 적극 반영됨이 막혀있는 상태에서의 제도 또는 법률 등에 의한 규범적 따름이라고 한다면, 묵자의 겸() 차원에서의 팔로잉은 팔로워의 생각이 적극 반영된 상태에 대한 자신의 책임적 역할을 강조하는 자발적 따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묵자의 사상을 보면, 팀제시스템 또는 Bottom up 조직 운영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사회복지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보편주의 관점의, 고객참여주의 관점의 복지사업 전개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시도별로 열풍이 일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라는 움직임과도 연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가며

 

현장의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에게 3가지 질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번째 질문 - "여러분은 사회복지에 대한 여러분의 사상적 출발점이 공자의 화()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묵자의 겸()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번째 질문 - "사회복지사 여러분은 중간관리자 혹은 리더로서, 공자의 화() 개념에서 기초한 조직운영 또는 관리방식을 지향합니까 아니면 묵자의 겸()에 바탕을 둔 경영방식을 지향합니까."

 

세번째 질문 - "사회복지사 여러분은 사회복지사업을 기획, 추진할 때 공자의 화()와 묵자의 겸() 중 어느 차원을 더 고려하고 있습니까."

 

'공자가 옳은가, 묵자가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사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인 나는, 시민으로서, 사회복지사로서 어떤 사상을 지향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樊遲退, 見子夏, : "鄕也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子夏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

(번지문인, 자왈: "애인." 문지, 자왈: "지인." 번지미달, 자왈: "거직조제왕, 능사왕자직." 번지퇴, 견자하, : "향야오견어부자이문지, 자왈: '거직조제왕, 능사왕자직,' 하위야?" 자하왈: "부재언호! 순유천하, 선어중, 거고도, 불인자원의. 탕유천하, 선어중, 거이윤, 불인자원의.")

 

(설명)

번지가 인에 관하여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지혜로움에 관하여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번지가 미처 깨닫지 못하자 공자께서 "곧은 것을 들어서 굽은 것 위에 놓으면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다"라고 하셨다. 번지가 물러나와 자하를 만나서 "아까 내가 선생님을 뵙고 지혜로움에 관하여 여쭈어보았더니 선생님께서 '곧은 것을 들어서 굽은 것 위에 놓으면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인가요?" 하고 묻자, 자하가 말했다. "의미심장하군요 그 말씀은! 순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여럿 가운데서 선택하여 고요를 등용하니까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고, 탕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여럿 가운데서 선택하여 이윤을 등용하니까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지요.“

 

 

상기와 같은 번지(樊遲)와 공자(孔子)의 대화를 읽고 “‘()은 애인(愛人)이다.’ 그리고 ()는 지인(知人)이다.’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은 애인(愛人)이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를 포함한 사람(인간) 또는 내가 아닌 타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 인격을 뜻하기도 합니다.

 

, 이 말은 < (), 다시 말하면 애인(愛人)라는 인간과 라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인격)을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他人)’과 그 타인(他人)인 갖고 있는 인품(인격)’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人間) , 자연 대비 인간이란 존재와 그 인품(또는 인격)’을 사랑하는 것이다. > 라는 것처럼 3가지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네요.

 

이렇게 보면, 자하(子夏)의 해석처럼 인()단순히 정치에 필요한 어진 사람을 애인(愛人)한다는 뜻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하(子夏)의 비유에 국한해서 인()의 의미를 살핀다면 그렇게 국한시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하(子夏)의 생각이지 공자(孔子)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자 사전을 살펴보면서 더욱 더 확실해졌습니다. ‘()’은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에 음()을 나타내는 ()가 합()하여 이루어진 문자이더군요. 고대의 사람들이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어질다라는 의미를 갖는 ()’이라는 상형문자를 만들어낸 것이었던 거죠.

 

, 그럼 인()에 대해 정리해 볼까요.

 

제 생각으로는 공자(孔子)가 말하는 인() , 애인(愛人)인재(人才)를 사랑해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을 그리고 인간의 인품(인격)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과, 붓다가 강조한 자비(慈悲: 남을 사랑하라)’와 동일한 의미로 말입니다.

 

그 다음으로 ()은 지인(知人)이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는 외형적으로 ()(화살)의 합자(合字)’ ,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미적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비유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궁수가 당긴 활시위를 놓는다는 것은 맞추고자하는 어떤 표적을 결정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해보면 나의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된, 정리된 어떤 것에 대해 타인에게(표적) 화살()을 날리듯이 말()을 통해 내 뱉는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지()마음속에 확실히 결정(또는 정리)된 어떤 것(알다)을 상대방에게 알리다, 나타내다, 드러내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앞에서 ()은 나를 포함한 사람(인간) 또는 내가 아닌 타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인(知人)’나 자신(의 인품())을 안다. 타인(의 인품())을 안다. 타인에게 나 자신(의 인품())을 알리다(또는 드러낸다). 자연 대비 인간의 존재(의 가치)를 안다(또는 알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에 저는 지()인간을,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인격)을 안다 또는 알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하(子夏)의 말처럼 인재(人才)를 알아본다.’는 제한적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 않겠냐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 애인(愛人))과 지(: 지인(知人))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어떻게 연동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에서 저는 인()인간을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인격)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뜻이고, ()인간을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인품(인격)을 안다 또는 알린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 그럼 인간()을 정중앙에 놓고 오른쪽에는 지(), 왼쪽에는 애()를 위치시켜봅시다. 그러면 인간()을 중심으로 인()과 지()를 연계시켜보면 인간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순환 싸이클 형태의 의미가 만들어지네요. 그런데, 이 문장에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할까요. 저는 나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성찰(省察)’이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희생(犧牲)’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저는 공자(孔子)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친 인()과 지()인간()은 나와 타인, 나와 자연 등과 같은 관계 속에서 항시 성찰과 희생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야 한다.’라는 삶의 철학이며, 그리고 이런 삶을 지향하는 인간()이 바로 공자(孔子)가 그토록 강조한 '군자(君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成人之美(성인지미: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줌)’가 이해가 되고, 전에 읽었던 책 중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제임스 칠턴, 전지혜 옮김)’라는 책의 제목을 재음미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 나와의 관계, 자신과 조직과의 관계에서, 나와 동료와의 관계, 나와 고객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성찰(省察)과 희생(犧牲)의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직업적 활동 자세를 지향 > 하는 것이랍니다.

 

이처럼 사회복지사 여러분이 현장에서 자기(自己)를 키우기보다 자기(自己)가 아닌 것을 키우고자 노력한다면, 자기를 세우기에 앞서 먼저 남을 세우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사 여러분 자신을 세우는 것이고, 사회복지를 키우는 것일 것입니다.

 

[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