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사상 149) 思와 學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자~!

강호철 2020. 12. 1. 01:20

 

1. 식(識) 단계

 

(1) 학(學)

 

자는 (절구 구)자와 (집 면), (효 효), (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자 위로 자를 감싼 양손이 이미지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에 자는 배우다공부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더불어 자는 배우다, 공부하다.’는 의미를 바탕으로 < 철학(哲學) 또는 전문적(專門的)인 여러 과학(科學)을 포함(包含)하는 지식(知識)의 조직체(組織體). 곧 현실(現實)의 전체(全體) 또는 그 특수(特殊)한 영역(領域) 및 측면(側面)에 관()하여 체계화(體系化)된 지식(知識)의 계통적(系統的) 인식(認識) 이라는 명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를 간단히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학문(學問) 이다.

 

결론적으로 동사로는 배우다, 공부하다는 의미를, 명사로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 이(而)

 

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지금의 자는 ‘~로써‘~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 자는 말을 이어주는 글자, 달리 표현하면 연사(連詞, 접속사)에 해당하며, 주로 동사성 성분(형용사도 이어 주기는 한다)을 이어 준다. 의미 상으로는 순접(~하고, ~하며 등)과 역접(~하지만, ~하나 등)이 모두 가능한 유연한 연사이다. 그 외에 드문 경우지만(주로 한문이 정립되기 이전의 고대 중국어에서) ‘자네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 처럼 ''라는 뜻의 2인칭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3) 불(不)

 

명사 앞에 위치하여 하지 않다, 은 아니다.’란 동사적 의미를 갖는다.

 

(4) 사(思)

 

자는 생각하다, 사색하다라는 동사적 의미외에 생각이나 심정’, ‘정서또는 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이라는 명사적 뜻을 가진다.

 

원래 자는 (밭 전)자와 (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자는 머리()와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자가 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5) 즉(則)

 

은 아래와 같이 2가지 의미를 갖는다.

 

(1) 첫째 법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자는 (조개 패)자와 (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의 금문으로 보면 자가 아닌 (솥 정)자가 이미지그려져 있었다. 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자는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는 이렇게 신성함을 뜻하는 자에 자를 결합한 것으로 칼로 솥에 문자를 새겨 넣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금문(金文)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 솥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솥에는 어떤 글들을 적어놓았을까? 대부분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들을 적어놓았다. 신이 전하는 말이니 그것이 곧 법칙인 셈이다.

 

이때 법칙 칙자로 읽히며, < 1. 법칙(法則), 2. 준칙(準則), 3. 이치(理致) >라는 명사적 의미와 함께 ‘4. 본보기로 삼다, 5. 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와 같이 동사적 의미도 갖는다.

 

(2) 둘째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본 경우는 법칙 칙()이 가차(假借)되어 곧 즉()‘자로도 사용되는 경우이다. 이에 < (), 만일(萬一) ~이라면 (), ~하면, ~할 때에는 () > 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천즉천(一賤則賤) 또는 필사즉생(必死則生) 이 이에 해당된다.

 

(6) 망(罔)

 

자는 ‘(금수, 어류 및 죄인 등을 잡는)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자는 (그물 망)자와 (망할 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에 이미 그물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망할 망)자를 더한 자도 그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 자는 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별체(別體)자인 것이다.

 

자는 단순히 그물이라는 뜻 외에도 그물에 걸려든 상황과 연관되는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자가 가진 의미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사리에)어둡다, 멍하다또는 속이다등과 같은 의미도 갖는다.

 

(7) 태(殆)

 

자는 뜻을 나타내는 죽을사변((=), 죽음)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재난(災難)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태ㆍ이)로 이루어진 회의문자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는 (뼈 알)자와 (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부서진 뼛조각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자는 수저와 입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미치다 태)자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결과 자는 죽음을 뜻하는 자와 자를 결합해 < ‘거의 죽음에 이르다, 위태롭다 등’ > 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다만 지금의 자는 ()에 통하여 거의장차라는 뜻만 남아 있다.

 

 

2. 지(知, 智) 단계

 

 

(1)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학이불사(學而不思)’?!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많으나, 그 지식을 쓸 방법을 모르거나 또는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해보지 않음으로 인해 알기는 하나 알지 못함과 같은 답답하기만 상태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만 지식을 학습하고 사용하게 되면, 분절적 상태로 축적되어져 있는 지식에 우리 인간은 사로잡혀 버린다. 예를 들어, 특정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 대한 분석 및 이해 등이 없이 단지, 문서상의 지침 또는 매뉴얼만 강조하는 답답한, 고지식한, 융통성이 없이 행하는 모습은 바로 학이불사(學而不思)’에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 금방 수능이다.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지식을 왜 중고등학교때 그렇게 공부를 많이했는지 모르겠다고... 스펙(spec)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그 옷(스펙)이 어울리는지 등에 대한 판단도 없이 입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어떤 것라도, 취업에 성공한 타인이 취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혹은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시되어지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취하고자 하는 자세 또한 학이불사(學而不思)’의 모습이다. 스펙(?)만 있으면, 당연히 취업에 성공할 것이라는 헛된 꿈, 소망에 휘둘리는 모습말이다.

  • 그러나 입사 면접 등에서 요구되어지는 것은 1+1=2만은 아니다. ‘1+1=2라는 스펙만, 지식만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누구나 한다는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는 면접 방향도 존재함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조직에서는, 사회에서는 일정 단계까지만의 지식을 원하는 영역이 있는 반면에 그 이상의 사고를 원하는 영역 또한 별도로 공존하는 것이 법칙인 것이다.

  • 지식을 습하는 기준, 즉 사상이 제대로 서있지 않으면, 불필요한 지식만, 축적되지 않는 지식만 습득하게 된다. 법정의무교육 중에 인권 교육이 있다. 매해 2회씩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럼 10년동안 20회 이상 교육을 받은 직원은 1년 동안 2회 교육을 받은 직원보다 인권에 관한 지식이 풍부할까. , 그렇지만은 않다. 이처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주위에는 정말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온오프라인 상태로 널려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 섭취하지도 못할 방대한 양이다.

  • 한 번 생각해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다 섭취해야만 할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물을 이해하기 위해 지구의 오대양을 다 알 필요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인 것이다.

  • 그렇지만 사회복지현장에서는 종종 이와 다른 모습과 조우하곤 한다. 그저 막연히 기획에 대한, 사례관리에 관한, 조사연구에 대한, 통계에 관한, 네트워크에 대한, 패러다임에 관한 정보와 지식 등을 취하기만을 갈망하는 모습 말이다. 과연 그 사회복지현장가는 왜 자신이 그 정보와 지식을 그토록 취하고자 하는지, 그 정보와 지식을 어디에 사용하고자 하는지, 그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신념을 가지고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타 사회복지현장가 대비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애씀(: 승진 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것이 현실이라면, < 그 애씀에 는 있을 지언정, 고객은, 사회복지는 없음. >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2)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하는 맘이 앞서서, 영법을 배우지도 않고, 바다의 특성 등에 대한 이해도 없이,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겁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 사회복지현장가는 나름 자신의 생각 및 의지 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자신의 생각 및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등대가 되어줄 사상을 정립하고 체계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기획나의 또는 내가 속한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사상의 실천 계획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례관리사업관련 계획서를 그 누가 작성하던지 동일한 사업형태로 계획, 추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의 생각이 반영 안 된, 나의 의지를 녹여내리지 못한, 나의 사상이 구현되지 않은 타인의 사업계획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모방, 추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 반면에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글을 배움은 천년의 보배요, 물건(物件)을 탐함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다.’學文千載寶 貪物一朝塵(학문천재보 탐물일조진)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학문(學問)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努力)해야 한다.’學如不及(학여불급)을 강조함과 더불어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學如逆水(학여역수)를 깨닫게도 해준다.

 

 

3. 행(行) 단계

 

필자 생각으로 <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관계와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하는 가운데 하지 않으면, 전통, 과거 등과 같은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곧 우물안 개구리에 만족해서는 안 됨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전통이나 과거 등과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변화하면서 나아가라는 것이다.

 

둘째,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하는 가운데 함에 충실하지 않으면, 근본이 없는 관계, 즉 탄탄하지 않은, 회귀할 수 있는 관계가 없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본다. 모든 동물과 물질 등의 운동에는 회귀라는 탄력성을 보유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도 이와 유사하다고 본다. ‘변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나아감이 아니라, 관계(반석)을 바탕으로 나아감(변화)과 되돌아옴(관계 성장)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더 나아감(새로운 관계 구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무리 지어 보면, 사회복지의 발전은 사회복지사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 개개인의 변화가 축적되어야만이 구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조직의 발전이 조직원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 개개인의 변화가 축적되어야만이 구현 가능함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성장된 조직을 바란다면, 무형의 조직을 향해 자꾸만 요구하지말고, 그 무형의 조직의 한 일원인 나의 현재 역량을 겸허히 고찰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나갈 것인지를 설정하여, 담금질을 하도록 하자. 그러면 조직이 어느 순간 함께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