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사상) 98. 변화에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사회복지사가 되자

강호철 2017. 5. 13. 12:40

 

아래의 글은 < 사회문제의 경제학 / 헨리조지 >에서 발췌, 재정리한 내용입니다.

이 책의 내용이 단순히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특정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문제 예방과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다 주는 사상적 가치를 전해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인류 문명 초기에 사람들이 갖고 있던 기본 인식이었으며, 정치조직은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처럼 평등권에 기초를 둔 제도가 다수를 소수의 노예로 만드는 제도로 변질되는 가운데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탄난 것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부터이다. 

 

모든 제도는 통치권력이 수반되는 법인데, 사회가 성장하면 제도의 기능에 대한 상찬이 많아지고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제도들 중에 강력한 것은 다른 제도의 권력을 흡수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결국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정부 운영은 특권층의 몫이 되고 만다.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전체에 비해 개인의 힘과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면, 정부는 대중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사회가 성장하면 정부는 점차 사람들로부터 독립되고 사람들을 넘어서는 존재로 변질되며 권력은 점차 지배계급이 장악한다. 과거 문명의 역사에 대해 곱씹어보면 '부유하고 강대한 민족들은 어김없이 자유를 상실하며, 오직 작고 가난하고 고립된 공동체에서만 자유가 유진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권력이 집중됨에 따라 사람들이 처음에 갖고 있던 인식은 점차 사라지고, 대중은 오직 통치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자라난다. 

 

사적 소유권과 세습적 지위 때문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과 세습적 지위가 생기는 것이다. 그 결과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과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저항에 필요한 정신과 지성이 없고,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 거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집권당이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항상 지지한다. 부자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므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법이 없고, 잘못된 통치에 대항해서 투쟁하지도 않는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더라도 대항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에 위협하는 권력자들을 매수해버린다. 

 

사실 형식적 민주주의는 가장 쉽게 독재와 실정으로 전락한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는 부의 분배가 평등한 곳, 즉 대다수의 시민들이 빈곤에 매이지도, 부에 사로잡히지도 않은, 인격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살 수 있는 곳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생계를 주인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두려움이나 특혜가 없는 상태에서 안락한 삶을 유지할 자유와 투표할 자유는 함께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공화국의 건전한 기초가 확보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문제의 저변에 부의 분배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1평방인치의 땅에 대한 권리조차도 없는 사람, 가진 것이라곤 두 손밖에 없고 빈곤 때문에 동료와 일자리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에게 조국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부와 권력을 운이 좋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그 외이 사람들을 인간 기계로 취급하는 문명은 필연적으로 무질서를 조장하고 파괴를 초래한다. 증가하고 있는 필요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맞추어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한 나라뿐 아니라 현대 문명 전체를 위협하는 이와 같은 위험들은 더 높은 단계의 문명이 탄생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즉, 전에는 충분했던 상황과 제도로는 이제 사람들의 욕구와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의 국민은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정치시스템과 조직을 개혁하는 데 필요한 지성적인 관심이 부족한 상태이다. 물론 국민들은 계속해서 투표를 한다. 하지만 국민의 힘은 약해지고 있다. 대중은 개혁을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나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대중은 실제로도 깊고도 일반적인 원인이 있는 사회현상을 나쁜 사람들이나 악한 정당 탓으로 돌린다. 

 

이 모든 것은 이해력의 부족과 생각의 소심함을 보여준다. 정부가 점점 더 부패하고 국민들의 손을 떠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말로 우리나라 정부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정치에 극진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의 견해를 검토하여 낡은 생각은 버리고 자유로운 정신에 입각해 판단해야만 한다. 노예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노예 주인에게 표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부자들이 누리는 안락함과 편리함을 모두 누리는 문명, 감옥과 빈민구호소 그리고 구제단체가 필요 없는 문명을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 출현하기만 하면 된다.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사회문제를 처리하는 데 발휘되는 지능이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물질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발휘되는 지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달리 표현하면, 부를 생산하는 기술은 크게 진보했지만 공평한 분배를 달성하는 일에서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던 것이다.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의 처리에 더 많은 지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지능이라야 한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국민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국민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능은 단지 지적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감성에서 나오는 생명력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에서 나오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소수의 이기심이건 다수의 이기심이건 이기심을 초월해야 한다. 또 그것은 정의를 추구해야만 한다. 모든 사회문제의 바탕에는 사회적 불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이 어떻게 변하든 돛을 똑같이 유지하면서 똑같은 항로를 고집하는 항해사는 절대로 안전하게 항구에 도달할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