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인 나는/사회복지사의 사상

56. 고전에서 21세기 사회복지마인드를 엿보다.

강호철 2015. 6. 13. 21:44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인 것이죠.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관점'입니다.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는 서양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 문화는 그 자체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소위 문화 일반의 준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서양문화는 어떤 사회구성원리를 바탕으로 할까요.

 

근대사는 서구문명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서양 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흄과 칸트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양 근대 문명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합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선을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두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몽주의 이전에는 기독교 교리를 벗어난 과학자들이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고, 오늘날은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높은 범죄율, 생명 경시 풍조는 종교의 역할이 무너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은 인간적 가치를 신장하기 보다는 신무기나 신상품의 생산기술이 과학 발전의 동기가 되고 있으며, 과학은 다시 자본 축적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 사회 변화를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종교라는 자신의 대립면을 상실하고 무한 질주를 거듭하기 때문에 과학은 희망을 주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현대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권 국가의 일방주의적 세계 전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말하자면 대립면을 상실한 질주입니다.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존재론의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패권주의적 세계 전략은 자기 증식 운동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러한 전략은 결국 위기를 심화할 뿐이라는 것이 모순이지요. 이를테면 패권주의의 질주는 자기의 목표를 부단히 허물어버리는 모순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둘째,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인 것 대비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는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이라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원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즉,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인 것이죠. 그래서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 또한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 또한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 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대립면을 상실한 일방적 질주인 것이죠. 존재론적 구성 원리와 존재론적 운동 형태를 지양하지 않는 한 다른 경로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반면에 동양의 관계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 사회복지계를 한 번 살펴볼까요.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회복지학은, 현장을 지배(?)하는 사회복지 패러다임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도입된 것이다. 상기 주장에 의하면, 사회복지 또한 존재론적 사회구성 원리에 기초하여 탄생한 개념이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사회복지학에도 존재론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한 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두 사람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본질적인 것이 드러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더 키가 크다, 잘 생겼다, 옷을 잘 입었다, 부자이다, 지적으로 보인다 등'과 같은 외모 즉, 겉 모습 이미지에 대한 차이를 논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이유는 엄밀히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인 것이죠.

 

다시 말하면,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와 같은 차별화는 어떠한 경우든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입니다. 이 점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인 것이죠.

 

(* 장애인복지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장애, 비장애' 구분 하는 것 또한 존재의 본질에서 출발하기 보다는 차이에서 출발하는 비대칭적 비교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존재의 독자성과 정체성 즉, 존재 가치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죠.

 

이에 대해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 없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기에 공존인 것이요, 본질의 외적인 측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 또한 자연적인 것이기에 이러한 차이 또한 본질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공존이라는 개념 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즉, 존재론에 앞서 관계론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

 

이 시대는 주 황실을 정점으로 하는 고대의 종법 질서가 무너지면서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무한 경쟁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축의 시대로서 사상의 백화제방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상적인 모델을 전제하고 그 모델을 현재와 현실 속에 실현하려고 하는 소위 건축 의지가 바야흐로 해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적 상황입니다. 설계 도면을 파기하는 것이지요.

 

(* 21세기 현대 사회복지는 동양철학에 근거한 관계론적 사회복지(담)론, 실천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인간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였고 이러한 사회를 안전적으로 유지하며 발전시키기 위하여 사회노동적 역할 즉, 직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봅니다. 즉, 개인의 안전 도모 차원에서 인간 상호간 관계와 사회적 관계망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차원에서 개인 상호간 관계가,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즉, 사회는, 그 사회 안의 관계망은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동양철학 관점에서의 사회복지는 인간 개개인의 재활, 자립이기에 앞서 사회적 관계망 회복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재활, 자립이 추구되어야 하고요. 그렇지만 사회복지현장은 그 순서가 반대로 가고 있죠. 개인의 재활, 자립이 우선이고 관계망은 보조 개념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비스전달체계도를 보면 이러한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죠.) 

 

동양사상의 관계론 관점의 사회구성원리를 바탕으로 21세기 새로운 문명론 그리고 최대한의 사회 건설 담론이 개화되길 바랍니다.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오래된 삶의 방식에서 오염과 낭비가 없는 비산업주의적 사회발전이라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이러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 21세기 사회복지는 지역주민 개개인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라는 관계망 안에서 특정 원인(심신의 건강, 경제력 약화, 불평등, 인권침해, 핸디캡 등)에 의하여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이탈, 소외 등의 상태로 빠지거나 빠질 위험이 있는 경우, 사회적 관계망 약화 예방(강화), 관계망 원상 복구, 관계망 재구축 등을 도모하는 기능과 역할을 그리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쟁(패권)주의 하에서) 이를 바탕으로 지역주민 개개인이 매슬로우 5단계 욕구를 원활히 충족(삶의 질 향상)시켜나갈 수 있도록 도모하는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기능과 역할을 바꾸려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겠죠. 존재론적 구성 원리에서 탈피하여 관계론적 구성원리를... 존재론적 운동 형태에서 벗어나서 관계론적 운동 형태를...)      

 

(*이 글은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저)'의 서론 내용(p15~33)을 '사회복지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만 간추려 저의 생각 하에 재정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