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1일 부터 2022년 7월31일까지...

우리 어울림터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 중장기전략(안)

 

먼저 변화의 시발점이자,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는 중장기전략을 살펴보자.

 

 

 

2. 어울림터의 변화

 

상기와 같은 one-page 중장기 전략(*초안 자료)을 바탕으로 2022년 7월31일까지 다음과 같이 35개의 변화가 일고 있다.

 

01. 사무실 2층으로 이전

02. 1층 사무실은 고객 휴게실 및 생산품 전시 공간으로 변경

03. ‘근로에서 자립까지 직업훈련 아카데미반’ 교육 공간 조성

 

04. 직장내에서 근로장애인 상호간 존칭어 사용 원칙으로 함.

05. 직장내에서 근로장애인 상호간 ‘000님!’으로 호칭 변경 함.

06. 연가신청 등은 근로장애인이 직접 결재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함.

07. 근로장애인 출/퇴근 시 ‘출근부 작성’에서 ‘지문인식’ 방법으로 변경

08. 근로장애인 모두에게 명함 제작 및 제공

 

09. 2022-2025 어울림터 중장기 전략 수립

10. 어울림터 년 단위사업계획 및 월 단위 사업계획 및 보고 형태 변경

11. 운영위원회와 노사협의회가 함께 참여하는 ‘인사위원회, 고충처리위원회, 시설안전위원회, 홍보위원회’ 조직, 운영

12. 매주 토요일 당직제 어울림터 운영 폐지

 

13. 꽃차 사업 정리

14. 장류 및 양초 생산판매 집중 전략 수립 (* 수정 보완 중)

15. 온라인쇼핑몰 운영 포함 유통사업 연구개발 (*계류 중)

16. 장류 세트 상품 개발 (3종 : * 수정 보완 중)

17. 양초 생산품 정리

18. 어울림터 통합 홍보 팜플렛 기획/제작

19. 명함 디자인 변경

 

20. 어울림터 보호자 및 고객 카톡방 개설/운영

21. 어울림터 페이스북 개설/운영

 

22. 교육훈련반 운영의 포커스를 ‘근로에서 자립까지 필요한 직업적응훈련’으로 설정

23. ‘근로에서 자립까지 직업적응훈련 아카데미반’ 운영 유료화

24. ‘근로에서 자립까지 직업적응훈련 아카데미반’ 운영 관련 내/외부 강사단 조직, 운영

25. 양초사업장과 장류사업장 그리고 ‘근로에서 자립까지 직업적응훈련 아카데미반’ 독립적 운영 체계 완성

26.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주지사와 연계한 교육훈련 및 근로장애인 평가 및 통합사례관리시스템 도입

27. 제주도장애여성상담소와 연계한 근로장애인 정기적 상담 및 통합사례관리시스템 도입

28. 서귀포장애인체육회와 연계한 정기적 스포츠 활동 시스템 도입

 

29. 화장실 방향제 설치 등

30. 복도 등의 정리 통한 넓고 쾌적한 이동 통로 확보

31. 안전 도모 차원에서 무거운 물건 이동 장비 보강

32. 양초사업장 기계 2대 추가 및 작업 공간 재조정

33. 노후된 식당 에어컨 교체(시스템 에어컨 설치)

34. 여성 및 남성 탈의실 개보수 (* 진행 중)

35. 근로장애인을 위한 커피자동머신 설치, 운영

 

 

3. 나가며

 

지금까지의 변화를 토대로 어울림터는

 

- 인력 및 장비 확충 그리고 시설개보수 등을 통한 건강하고 안전한 제조 환경 강화

- 마케팅 강화 및 고객관리 등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 수익 극대화 체계 구축, 운영

- 직원 및 근로장애인의 맞춤형 제 역량 강화

- 중증발달장애인의 근로에서 자립까지 지원 연계협력 체계 구축/운영 등

 

과 같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이다.

 

이 흐름이 꺾이지 않고, 잘 이어져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2022년 3월 29일(화)

 

2022년 3월 25일(금)

'세상 모든 행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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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래의 글은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 임건순 저>의 '겸애(兼愛)'편(p.382-412)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겸애(兼愛)'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자!>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에 '사회복지현장의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식, 즉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병리현상과 사회복지의 역할, 조직운영 방식, 리더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기준이 두루 녹아내려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사 여러분이 현재 처한 또는 고민하고 있는 사회문제 등에 대해 이 겸애(兼愛) 사상을 적용한다면, 그 원인과 해답을 즉, 사회복지사로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판단/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의 모습, 우리나라 사회문제와 그 원인, 사회복지현장의 문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 나의 삶의 자세 등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2. 묵자는 왜, 겸애(兼愛)를 강조했을까.

 

2-1. 세상이 '난(亂)'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드시 난(亂)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바로 다스릴 수 있다. 난(亂)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살펴보면,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 이를 비유하자면 마치 의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과 같다.

 

 

난(亂)이란 단순한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라 이렇게 수직적인 질서에서 밑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거스르고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것, 거기서 비롯된 혼란과 무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 신하나 자식이 군주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난(亂)이다.
  • 자식이 자기만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부모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아우가 자기만 사랑하고 형을 사랑하지 않으면, 형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신하가 자기만 사랑하고 군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군주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이것이 바로 난(亂)이다.

 

 

반면에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 부모가 자식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으며, 군주가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은 것도 역시 천하의 난(亂)이다.
  • 부모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식을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형이 자기만을 사랑하고 아우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우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 군주가 자기만을 사랑하고 신하를 사랑하지 않으면 신하를 헐어가지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

 

 

또한 대등한 힘과 지위를 가진 주체들 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난(亂)이다.

 

수장인 제후끼리, 가(家)의 수장인 대부끼리 서로 싸우는데 그것들도 모두 난(亂)이고, 그것의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음이다.

 

2-2. 세상이 '별애(別愛)'하기 때문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강한 자는 반드시 약한 자를 위협하고, 부유한 자는 반드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고귀한 자는 반드시 천한 자를 무시하고, 영리한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속인다.

 

 

이런 난(亂)이 발생하는 원인은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런 병리 현상이 곧 별(別), 별애(別愛)인 것이다. 별(別)은 나누고 분별하는 것이다. 너와 나, 나와 타인을 나누고, 또 나의 이익과 나 아닌 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갈라서 세상을 보는 시각 내지 그런 시각을 가진 자가 꾀하는 극단적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3. 겸애(兼愛)로 세상을 바꾸자!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만들어내고 천하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다.

 

  • 만약 천하가 두루 서로 사랑하여 타인을 사랑하기를 제 몸을 사랑하듯 한다면 어찌 불효한 자가 있겠는가? 아버지와 형과 군주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한 짓을 하겠는가? 아우와 자식과 신하 보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게 하겠는가? 그러면 불효와 자애롭지 않음은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도적이 있겠는가?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과 같이 하는데 누가 훔치겠는가? 남의 몸 보기를 제 몸과 같이 하는데 누가 해치겠는가? 그러므로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 어찌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는 대부와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제후가 있겠는가? 남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과 같이 한다면 누가 어지럽힐 것인가?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와 같이 한다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이처럼 무릇 천하에 환란과 찬탈, 원망, 한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과 같은 환경은 배타적인 자기 이익 챙기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까닭에 인자(仁者)는 그것이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르다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겠는가.

 

以兼相愛, 交相利之法昜之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써 바꾼다)

 

 

서로 자기 이익만을 꾀해서 상대를 해치고 핍박하는 별(別)의 상태를 ‘서로가 상대를 대등한 이익 향유의 주체로 인정’하는 겸(兼)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겸애(兼愛)의 정치와 행정, 업무를 담당할 현명한 이들을 뽑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 현명한 이들을 묶어낼 정치시스템과 공적 기구를 조직·구성하고 운영할 원리를 만들자. 그 공적 기구의 목적을 분명히 바로 세우자.

 

이렇게 세워진 겸애(兼愛)의 정치 공동체라면, 그리고 그 공동체의 수장이라면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도 제 몫을 누리도록 의무적으로 보호할 것이다. 거기에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현상의 근절, 공유되는 호혜적 이익의 확대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겸애(兼愛) 정치, 묵자가 말하는 의로운 정치인 것이다. [끝]

들어가며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라는 책의 겸애(兼愛)편을 보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글귀가 적혀 있답니다.

 

  • 공자는 원망(怨望)으로 인해 불협화음을 내는 공동체를, 잘 조화된 음악과 같은 화합의 공동체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인(仁)입니다. 이런 공자의 사상을 간단히 개괄하자면 원망(怨望)에서 화합(和合)으로의 전환, <원(怨) → 화(和)>죠.
  • 묵자의 사상을 상기 공자의 사상처럼 간단히 표기하자면, ‘각자 따로(別)’에서 ‘모두 아우름(兼)’으로의 전환, <별(別) → 겸(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서로 자기 이익 만을 꾀해서 상대를 해치고 핍박 하는 별(別)의 상태를 ‘서로가 상대를 대등한 이익 향유의 주체로 인정’하는 겸(兼)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별(別)이라는 극단적 이익 투쟁이 전개되는 공동체를, 서로 이익을 공유하고 호혜적으로 이익을 주고받는 겸(兼)의 공동체로 바꾸려 하는 것, 이것이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인 것입니다.

 

, 이와 같은 두 사상가의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좀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공자 - pxhere.com 무료 이미지 

 

공자의 화(和)

 

우선, 공자의 <() ()>를 살펴볼까요.

 

첫째, 방향은 있으나 어디까지인지가 불명확하다?!

 

()이니 화()이니 하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도 추상적이네요. ‘원망으로 가득 찬 세상, 불협화음을 내는 공동체라는 것이 실존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화합(化合)으로 가득 찬 세상, 화합(化合)을 내는 공동체라는 것 또한 추상적일 수 밖에 없겠죠. 달리 말하면, 그 세상의 또는 공동체의 화합의 상태’가 개개인이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둘째, 백성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선 사상은 아니다?!

 

() 또는 화() 등과 같은 추상적, 관념적 개념에 대해 그 당시 모든 사람(왕으로부터 하층민까지)이 이를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입니다. 전란 속에서, 기근 속에서 이런 사상적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사상을 위해 필요한 학습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여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관료, 귀족, 왕족 등과 같은 소수의 특권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공자의 사상은 일반 백성에게 현실감있게 다가설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셋째, 누구나 취할 수 있는 보편적 사상이 아니다?!

 

공자는 <() ()>로 바꾸는 역할을 그 당시 하층민에서 요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이죠. 간단히 말하면 원() 과 화()라는 개념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자는 관료, 귀족, 왕족 등에게서 이와 같은 사상관을 설파하고, 이들이 충실히 이행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국가를 화()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째, 탑다운 형태의 사상이다?!

 

관료, 귀족, 왕족 등이 중심이 되어 화(), ()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은 공동체 또는 국가 차원에서 보면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백성의 생각이 제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성들보고 여러분에게는 화()에 대해 고민한 관료, 귀족 또는 왕이 있으니 이들을 믿고 따르면 개별적 또는 공동체 차원에서 화()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결국, ()의 상태를 희망하는 백성에게 화()는 관료, 귀족, 왕족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여러분들은 이들에게 그 모든 결정 권한을 위임하고 충실히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전형적인 오너 또는 최고경영자 중심의 ‘Tob down’ 조직 운영 방식이라고, 관료적 조직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복지의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전문가 중심의 또는 시혜적 관점의 복지사업 전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자의 겸(兼)

 

[크리스천 라이크&에듀 라이프]에서 발췌

 

그렇다면, 묵자의 겸(兼) 사상관은 어떨까요.

 

묵자의 사상은 각자 따로()’에서 모두 아우름()’으로의 전환, <() ()>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공동체 즉, 국가의 백성들을 개별, 개별에서 하나로 아우르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쉽게 얘기하면, 각자의 개별적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집약, 결정해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구체적이다.

 

<() ()>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기는 하나 그 대상이 공동체 또는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백성에서 왕까지 모두 포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자의 <() ()>보다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 공동체적이다.

 

특정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공동의 이익을 규정(또는 설정)하여 이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상호 달성 될 수 있는 공동체 지향이 중요하다는 개념은 관료, 귀족 또는 왕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의 이익을 설정하고 그 과정 속에서 개별 이익을 상호 달성할 수 있도록 조력할 것인가라는 논의 구조, 추진 구조에서 일반 백성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죠.

 

셋째, 보편적이다.

 

공자는 <() ()> 체계에서는 공동체를 통제하는 관료, 귀족 또는 왕족의 사상이 중요했습니다. 반면에 묵자의 <() ()> 체계에서는 일반 백성들로부터 왕족까지 각자의 생각을 차별하지 않고, 소외됨이 없이 모아서 하나로 모아보자라는 관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묵자는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직위의 사람보다는 차별 없이 각자의 생각을 제대로 수렴할 줄 아는, 이렇게 모아진 생각들을 가지고 소외됨이 없이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또는 묶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조정자, 중재자 또는 퍼실리테이터와 같은 존재를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신분에 관계없이 백성을 관리·채용하는 능력위주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넷째, 위와 아래가 없는 수평적이다.

 

공자와 묵자 모두 <() ()> 체계 관점 또는 <() ()> 체계 관점에서 팔로워는 리더에 절대 순종해야 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화() 차원에서의 팔로잉은 팔로워의 생각이 적극 반영됨이 막혀있는 상태에서의 제도 또는 법률 등에 의한 규범적 따름이라고 한다면, 묵자의 겸() 차원에서의 팔로잉은 팔로워의 생각이 적극 반영된 상태에 대한 자신의 책임적 역할을 강조하는 자발적 따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묵자의 사상을 보면, 팀제시스템 또는 Bottom up 조직 운영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사회복지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보편주의 관점의, 고객참여주의 관점의 복지사업 전개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시도별로 열풍이 일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라는 움직임과도 연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가며

 

현장의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에게 3가지 질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번째 질문 - "여러분은 사회복지에 대한 여러분의 사상적 출발점이 공자의 화()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묵자의 겸()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번째 질문 - "사회복지사 여러분은 중간관리자 혹은 리더로서, 공자의 화() 개념에서 기초한 조직운영 또는 관리방식을 지향합니까 아니면 묵자의 겸()에 바탕을 둔 경영방식을 지향합니까."

 

세번째 질문 - "사회복지사 여러분은 사회복지사업을 기획, 추진할 때 공자의 화()와 묵자의 겸() 중 어느 차원을 더 고려하고 있습니까."

 

'공자가 옳은가, 묵자가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사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인 나는, 시민으로서, 사회복지사로서 어떤 사상을 지향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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