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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블랙컨슈머 '착한 손님' 울린다

강호철 2013. 7. 2. 00:12

고가 의류·보석 쓰고 반품음식에 이물질 넣고 보상 요구

기업 가격 인상 부추기고정당한 불만 제기도 오해일반 소비자까지 피해 떠안아

 

 

정수기회사 사는 얼마전 '똥물을 먹었다'는 항의전화를 받았다. 이 회사 고객 불만 담당자는 "한달 한번 점검을 해야 하는 데,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어서 월초에 점검을 했더니 이 고객이 건강진단비를 달라"며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작은 실수는 인정하지만 배상이나 보상을 해야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욕설을 하며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해 속을 썩어야 했다.  많은 기업들이 블랙컨슈머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얼마전 삼성전자에선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시킨 뒤 문제가 발생했다며 보상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외식업체에서 벌어진 종업원과 고객의 마찰사건은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일부는 '블랙컨슈머'로 의심하고 있다.

 

블랙컨슈머는 검다는 뜻의 블랙(Black)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성어. 보상을 노린 악의적 민원 제기자를 뜻한다.

 

돈을 요구하는 나쁜 소비자 

 

제약회사 사는 종종 '의약품이 효과가 없다'는 소비자의 전화를 받고 한다. 의약품은 식약청 기준에 따라 제조하고 인·허가를 받기 때문에 약효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다. 더군다나 약효는 고객의 부적절한 사용법 등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막무가내식 항의에 어쩔 수 없이 고객의 환불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렌털전문 사는 작정하고 기업을 속이는 사기 사건에 가끔 말려든다고 말했다. 렌털 제품을 한꺼번에 계약한 후 한달 후에 가보면 해당 제품을 중고시장에 팔고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는 이런 블랙컨슈머는 대개 20대 초반 젊은이가 많다고 했다. 렌털 비용을 설치 후 한달 후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악용하고 '먹고 튀는' 것이다.

 

홈쇼핑업체 사는 고가의 의류와 보석을 반품하는 일부 고객 때문에 고민이 많다. 14일 이내 반품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동창회 참석 의상과 보석을 일시로 쓰고 반품하는 것이다. 심증은 있지만, 사전에 이를 예측해 판매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식품업체 사도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금전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잊을만하면 생긴다고 했다. 공정상 자동화 과정을 거치기에 이물질이 들어갈 확률은 작지만 "인터넷에 올리겠다"도 엄포를 놓으면 귀찮아서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소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논란이 벌어질 기간 동안 매출에 지대한 영향이 미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유통회사 사도 항의방문을 해 큰 소리를 내는 고객들이 잦다고 호소한다. 또 대응설명을 하려고 하면 '손님에게 반말을 한다', '내 말을 무시한다'며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구입한지 1년이 지난 제품을 들고 와 나사가 빠졌다고 환불을 요구하거나 물놀이용품을 가을철에 가져와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악성고객은 환불은 물론 택시비까지 줘서 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다.  

 

블랙컨슈머는 얼마나 되나 

 

지난해 하반기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314개사를 대상으로 '블랙컨슈머로 인한 기업피해현황과 대응과제'를 조사한 결과 83.4%에 달하는 기업들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거나 논리적으로도 지나친 고객들의 요구, 이른바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꼽는 고객들의 부당요구 유형으로는 '적정수준을 넘은 과도한 보상요구'57.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규정에 없는 환불·교체요구'(35.2%), '보증기한 지난 후의 무상수리 요구'(6.5%)가 뒤를 이었다. 소비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대응하며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인터넷·언론 유포 위협'(71.0%)을 가장 많이 지적했고, 이어 '폭언'(39.7%), '고소·고발위협'(17.6%), '업무에 방해될 정도의 연락과 방문'(16.8%) 순이었다.  

 

결국 피해는 다른 소비자에게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71.7%의 기업이 '수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기업이미지를 훼손할까 우려해서'(79.8%)라고 응답했다. 실제 조사기업의 50.4%'인터넷의 악성 비방이나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로 인해 기업이미지 훼손과 제품판매 감소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이 블랙컨슈머들에게 이용당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블랙컨슈머가 쓰다 버리거나 가지고 가버린 제품을 비용처리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가격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 블랙컨슈머가 늘어나다보면 정당하게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들도 블랙컨슈머로 오인받을 수 있다. 하지만 블랙컨슈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전하면서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블랙컨슈머의 증가는 기업의 대소비자 서비스 비용을 과도하게 집행하게 해, 결국 개별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질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 강석봉기자

입력: 2012022623:4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