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판공을 보는 중에 신부님에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지고 계신 십자가는 당신의 것도 아니고 당신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십자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라...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실때, 아니... 어쩌면 구유에 태어나실때부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계셨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성부이신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태어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기까지 하신 것일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희생'을 바탕으로... 그렇다고 현재 우리 인간이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은 '구원' 그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그 구원의 기회를, 조건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그 기회에 대한 선택은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 구원의 관계는 선물로 주셨지만 그 관계를 이을 것인가, 아닌가는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겨주신 것이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늘 아침에 읽은 '묵자 이야기'중에 "한 사람이 변화 정도에 따라 그를 중심으로 한 세상이 그 정도로 변한다."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성서에도 '질그릇'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우리 인간은 다양한 그릇의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모양에 따라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질그릇이 다른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욕심'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형태의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서 말씀이 그 불가능을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어쩌면 성서의 말씀은 물리적인 것에 기초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봐야할 것이다. , 물리적 사고에서 탈피해서 생각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린왕자 '두번째 이야기'에서~] "설령 고약한 이웃이 있더라도 그저 너는 더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야.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지. 남편이나 아내, 상사 및 부하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

 

이와 같은 '질그릇의 비유''십자가' 의 의미는

 

첫째,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깨닫고 키우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그 자존감을 자신만을 위해 키우지 말고 '가정과 지역주민(사회)의 바람직한 상태로의 변화'라는 방향으로 촛점을 맞추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셋째, 그 변화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1차 희생)을 다하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넷째, '자신의 1차적 희생 하에 가정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한 희생(2차적 차원)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과정에서 '노력과 희생 없이 분에 넘치는 욕심을 가지지 말라(겸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고 사료된다.

 

 

 

 

우리 인간은 지구의 자연적 존재들과 대비해서 그렇게 외형적 그릇이 큰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인간이 지구상의 생태체계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질그릇'이 외형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질그룻'은 인간이 잠재적 내면 세계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성찰을 통해 우주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존재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나의 존재의미를 깨닫고, 그 존재의미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변을 위한 희생을 즉,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라'라는 뜻을 알려주신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축복받은 창조물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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