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면서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느님은 어떻게 우리 인간들을 사랑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고 계신가?”

 

나는 구약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라고 알고 있다. , 피조물은 창조자의 계명을 지켜야 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그에 따른 심판이 뒤따랐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약시대에 계율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내리신 대홍수 심판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자 문뜩 대홍수 심판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기분은 어땠을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하느님이 매우 가슴 아파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심판했다고 가정해보자(한 자녀만 살리고).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그리고 내린 후, 결정을 실행에 옮길 때와 실행에 옮긴 후 시점에서의 부모 마음은 어땠을까.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통곡과 함께.

 

이런 마음이 들자 어쩌면 구약시대 대홍수와 관련해서 설명되어지는 홍수와 천둥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슬픔과 아픔의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분 짓는 성자이신 예수님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고심하게 되었다. 즉, 단순히,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느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자녀로 들어 올림을 하고자 했을까, 다른 또 다른 마음이 없었을까, 어쩌면 대홍수에 의한 심판으로 인한 하느님의 피조물 인간에 대한 큰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보여주시는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홍수 심판 이후 하느님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결심을 하셨을까?

 

대홍수 심판이 있은 후에 하느님은 앞으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창조한 사랑하는 피조물의 생명을 취하는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와 함께 사랑하는 자신의 피조물(인간과 동물, 식물 등을 포함)의 생명을 취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속죄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심신을 본떠 창조되었기에 분명히 심성에 따른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하느님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인간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고자 결심하시지 않았을까, 자녀의 생명을 취하는 부모는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리고 이러한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하느님은 2가지를 선 해결하고자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피조물인 인간이 지은 원죄를 씻어줄 필요성이다

둘째는 창조주 입장에서 피조물의 생명을 취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미안한 맘을 지울 필요성(: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감에 의해 자녀보고 자기의 종아리에 회초리질을 하게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처형에 의한 돌아가심을 다음과 같이 재해석 해보았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기에, 삼위일체중 성자로 가장 미천한 가정의 자녀로 탄생(창조주이면서 피조물이 되는 낮춤을 보여주심 / 인간을 자녀임과 더불어 형제, 자매로 받아 올리심)하셨고, 인간(피조물)에 의해 배신과 모욕 속에 십자가 처형을 받아들이셨다(인간의 원죄 해소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사랑의 아픔 치유).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성부의 형제, 자매로 받아 올려 진 인간 모두가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품안에서 십계명을 지킴과 동시에 심판 대신에 회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이라는 은총을 보내주셨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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