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를 보고 있노라면 이리저리 즐겁다.

(조금 있으면 류현진, 김광현 등으로 이런 즐거움은 배가 되겠지~!)

 

토트넘 구단주, 손흥민 재계약 승인…팀내 최고대우 전망 (NEWSIS, 2020-11-04)

 

멋진 경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골을 넣는 장면을 보는 것도 즐겁고

골을 넣은 후의 세러머니를 보는 것도 즐겁고

경기 종료 후 관련 기사를 읽는 것도 즐겁다.

 

 

나는 왜 이렇게 즐거울까.

 

 

모 신문 기사를 읽던 중 '손흥민 선수는 이제 월드 클래스 선수이다. 기존 동양 선수들이 세계 프로축구 리그에서 유럽의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위한 조력자 역할 등을 주로 수행했다면, 손흥민 선수는 그 한계를 스스로 돌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

 

이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더 고상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문득, 필자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가져보았다.

 

"손흥민 선수에게서 즐거움, 행복감 등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인간 개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그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손흥민 선수의 의지와 열정, 노력 그리고 그 성과 등에 몰입되어지고 있는 것 때문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생각을 살펴보면, '한계'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한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평등' 아닐까.

 

손흥민 선수는 동양인이다. 통계적, 의학적으로 흑인 또는 백인 등 대비 피지컬적 조건이 떨어진다. 더불어 당시 대한민국의 '현 축구 시스템과 제도 및 정책 등'은 EPL 및 라리가 등과 비교해서 아주 선진적이지도 않다.(물로, 지금도 아주 질적으로 향상된 수준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차이'가 존재하는 불평등 속에서 손흥민 선수는 EPL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EPL 축구 선수 중에서 TOP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한계'가 갖는 의미가 '평등'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필자는 왜 손흥민 선수에게서 '한계'를 떠올렸고, 이제 '평등'과 연관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기획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문제 분석적 측면에서 '제약 요인'에 해당하는 요인들은 '손흥민 선수' 입장에서는 '불평등'하다. 예를 들어, 토끼와 사자의 입장을 떠올려보자. 토끼가 토끼로 태어난 것에 대해 평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태생적 측면에서 손흥민 선수는 타 유럽 축구 선수들과 비교시 획일적 평등을 요구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만약, 그 평등을 바란다면 다시 태어나야하겠지.

 

상기와 같은 제약요인적 측면과 달리 문제점적 차원에서  '손흥민 선수'는 '축구선수라는 꿈을 세운 후에 본 꿈을 구현하기 위해 취한 길이 바로 유럽에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우리나라 프로축구를 건너 뛰고 유럽리그에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선택, 결정 및 실천하였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쉽게(?) 갈 수 있는 축구의 길을 놔두고, 고행(?)의 축구 길을 선택하였다고 생각한다. 실패(?)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선택한 타 축구 선수들보다 더 못한 상태에 놓일 수도 있는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손흥민 선수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회는 존재하지만, 기회의 평등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아닐까. 어떻게 이와 같은 기회에 대한 선택이 '기회의 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할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은 자기결정권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이 자기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만이 기회가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만약, 우리 인간이 그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그 기회는 더 이상 기회로 볼 수 없는 것 아닐까. 

 

자, 그럼 '기회의 불평등'은 도대체 무엇일까.

 

손흥민 선수의 유럽 진출의 기회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 대비 기회의 불평등을 바탕으로 이뤄진 선택이고 결정이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 여러가지 어려움 또는 장애 등이 존재했겠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EPL 등과 같은 세계적 축구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도처에 널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보편화되어져 있는 21세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세상에 기회는 널려 있다. 꿈을 꾸는 이에게 기회는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하며, 다가선다. 어떤 기회를, 어느 시점에서, 어떤 형태로, 누가 선택하느냐만 존재하는 것이다.

 

< '기회의 불평등'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면, 도대체 '기회의 불평등'은 무엇인가.

 

 

필자는 '원칙(Rull)'이라고 생각한다.

 

TV 등을 통한 EPL 중계를 시청해서 알겠지만, EPL에서 뛰는 선수는 인종별로 다양하고, 국가별로 다양하며, 연령별로 다양하다. 그렇다고 '영어'로 말할 수 있고,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선택'을 매우 중요시 한다. 달리 표현하면, '능력'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즉, '능력'이 입증되면, 그 정도에 따라 출전기회도 달라지고, 인기도 달라지고, 연봉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럼 이 '능력'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바로 '노력, 성실, 헌신, 희생, 성장, 변화 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EPL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 '평등'은 제약요인적 불평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도전적 자세로 기회를 선택, 추진하는 인간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의 행사, 즉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 > 아닐까. 

 

이와 같은 관점 하에 필자는 이 '원칙(Rull)'이라는 문제점이야말로 손흥민 선수가 EPL(English Premier League)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가장 핵심적 요소이며, '기회의 불평등'의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필자는 손흥민 선수의 제약요인으로서 '불평등'을, 문제점으로 '기회와 선택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불평등한 제약요인 속에서 그 불평등을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꿈 실현을 위한 기회와 그 선택의 자유에 대한 원칙'이 바로 '기회의 불평등'의 핵심이고 본질이라고 본다.

 

 

마무리해보자.

 

 

필자가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제약 요인이라는 환경적 측면에서의 불평등에 순응하지 않고, 문제점 측면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환경 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유럽을 선택하였으며, 그 선택을 바탕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

 

인 것이다.

 

마치 '왜, 높이 날면 안될까.'라는 획일적 평등에 대한 불만 속에 '높이 날고 싶어.'라는 꿈을 바탕으로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비행'을, 즉 자기결정권이라는 선택과 시도를 보여준 조나던의 갈매기처럼 손흥민 선수는 필자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손흥민 선수가 좋은 것이다.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익숙해져라)"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상기하자.[끝]

‘21세기’하면 떠오르는 단어 또는 문장이 무엇인가.

 

아마 4차산업혁명, 온오프라인 융복합시대, 플랫폼시대, 인공지능시대 등’ 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물질적, 상업적, 과학적 체취가 강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좀 거북스럽기도 하다. 나와 관계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인간적으로 와 닿는 단어 또는 문장이 없을까.

 

'AI가 알아서 먼저 말을 건다?'…KAIST 연구진이 개발 [출처: 중앙일보 / 2020-10-28]

 

필자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21세기는 인권의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채택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권'이란 씨뿌리기가 시작되었다면, 21세기는 이제 그 씨뿌림의 열매를 추수하기 위한 전 단계에서 꼭 필요한 꽃을 피워야 하는 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인권이라는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교육과 세계인권선언 (한겨레 / 2017-12-19)

 

신문 지면 상의 조제 모리뉴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그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손흥민은 월드클래스인가?”라는 세계적 관심사와 관련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신중하고 겸손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사는, 놀랍도록 사회적인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같다. 아마 우리는 손흥민 같은 프로선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면 손흥민이 록스타처럼 행동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경기장에서는 록스타

 

라고 받아쳤다. 경기 외적으로 논란을 일으켜야 슈퍼스타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뉴 감독의 생각은 인권적 관점에서 ‘인권의 꽃 피우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토트넘의 달라진 위상...캐러거 "무리뉴가 EPL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 (Interfootball / 2020-10-28)

 

생각해보라. ‘인권이라는 단어가, 개념이, 사상이 왜 이토록 강조되고 있는지를.

 

그것은 바로 인간, 인간 개개인이 독특하고도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존재이기에 그 삶 자체가 평범해보일지라도 독특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독특함 속에서 또 다른 독특함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질적인 것이 된다.

 

이런 이질적인 요구를 할 때, 우리는 '욕심'이라고 표현하고, 이런 이질적인 요구는 결국 인권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게 만든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알자.

 

인간은 독특한 존재이기에 그 언행 하나 하나가 독특하고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을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것, 존중해하는 것, 이것을 보장하는 것, 이것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꽃이 핀 인권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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