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대사전,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무극 [無極]'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정리함.

 

 

무극은 노자 도덕경(道德經)28장에서 참된 덕은 어긋남이 없어 무극에 돌아간다(常德不忒 復歸於無極)”라고 한 데서 최초로 나타난다. 여기서의 무극은 만물이 돌아가야 하는 근본적 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장자(莊子) 남화경(南華經)재유(在宥)편에서도 무궁의 문에 들어가 무극에 돌아간다(入無窮之門 以遊無窮之也)”등에 보이는데 이는 무위자연한 도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그 후 도덕경에 관한 주석의 하나인 하상공장구(河上公章句)에서는 도덕경28장에 대해 사람이 능히 천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으면 참된 덕이 자기에게 간직되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으면 장생하여 몸을 무한한 세계에 귀의시킬 수 있다(人能爲天下法式 則常德常在于己 不復差忒也 如此長生久壽 歸身于無窮極也)”라고 주석했다. 이후부터 도교수련가 사이에 무극을 최고의 수련경계로 삼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주역의 계사(繫辭)에서는 역에 태극이 있으니 태극에서 양의()가 나온다. 양의에서 사상이 나오며 사상에서 팔괘가 나온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八卦)”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의 태극은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나오기 이전의 근원적 존재라는 의미로 풀이되어 한대(漢代) 이후 중국철학사에서 매우 중시되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을 종합하여 무극과 태극을 연결시키며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부각시킨 인물이 오대말의 도교사상가인 진단(陳摶)이다.

그는 정역심법주(正易心法註)에서 도의 원초적 상태를 무()라고 보고 무는 태극이 아직 나타나기 이전, 한 점의 텅비고 신령스러운 기운으로서 이른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無者 太極未判之時 一點太虛靈氣 所謂 視之不見 聽之不聞也)”라고 말한다.

 

기의 가장 원초적 상태를 무라고 보는 것인데 바로 이어진 양의(음양의 두 기운)는 바로 태극이며 태극은 곧 무극이다(兩儀卽太極也 太極卽無極也)”라는 언급을 고려하면 무는 곧 무극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북송대 성리학의 문을 연 주돈이(周敦頤)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표현을 통해 무극과 태극을 연결시켰다.

 

일설에는 무극의 앞에 ()’라는 글자가 있어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다(自無極而爲太極)”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朱子: 주희(朱熹))는 이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태극 외에 무극이 따로 없다고 밝혔다. 태극만을 말하고 무극을 말하지 아니하면 태극은 하나의 경험적인 사물이 되어 모든 조화(萬化)의 근본이 될 수 없고, 무극을 말하고 태극을 말하지 아니하면 무극은 공허한 존재로 남아 역시 조화의 근본이 될 수 없다고 풀이했다. 그는 무극을 끝없는 궁극자, 태극을 태()인 궁극자로 해석하여 무극과 태극을 동실이명(同實異名)으로 보고, 주돈이의 무극을 형상 없는 무한정자로 이해하였다.

 

, 주돈이의 태극도설중의 무극이태극이라는 명제가 태극본무극(太極本無極)’이라는 명제가 서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극이태극무형이유리(無形而有理)’로 파악하였다. 그에 의하면 태극은 우주의 근본원리로서 모든 이치의 근원이라면, 무극은 태극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보편적이며 절대적 존재임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는 무극이태극을 무극이 태극을 낳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육구연(象山 陸九淵)은 유가적 전통에 무극이란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들어 태극만으로 우주변화의 근본존재를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보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자는 이에 대해 무극이란 표현이 주돈이의 독창적 산물이라고 보고 태극이 한 사물에 그치지 않는 궁극적 존재라는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극이란 표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조의 장현광(張顯光)은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극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하나는 형상이 없음이요, 다른 하나는 궁진함이 없음이다. ()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청탁(淸濁)이 있고, 형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방원(方圓)이 있다. 그러나 무극의 경우 청탁으로 말할 수가 없고 방원으로도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은 곧 모상이 없기 때문이다. , 기에 속하는 것은 반드시 소장(消長)이 있고, 형에 속하는 것은 반드시 취산(聚散)이 있다. 그러나 무극의 경우 소장과 취산이 있지 않다. 이것은 궁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가 모상이 없고 궁진함이 없음은 곧 극()이며 무()인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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